이윤택 "대본 빼고 다 바꿔…나 죽어도 작품 계속되길"

'문제적 인간 연산' 12년만에 재공연
실제 연인 이자람-백석광, 연산-녹수로 첫 호흡

편집부

news@bujadongne.com | 2015-06-18 16:38:35


이윤택 "대본 빼고 다 바꿔…나 죽어도 작품 계속되길"

'문제적 인간 연산' 12년만에 재공연

실제 연인 이자람-백석광, 연산-녹수로 첫 호흡



(서울=연합뉴스) 김정은 기자 = "제가 죽어도 이 연극이 계속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래서 초연과는 완전히 다르게 표현했습니다. 제 스타일대로 계속 연출하면 제가 죽으면 연극을 못할 테니까요."(연극 '문제적 인간 연산' 대본·연출 이윤택)

1995년 초연 당시 연산군을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해 화제가 된 연극 '문제적 인간 연산'이 초연 20년, 2003년 재공연 이후 12년 만에 내달 다시 무대에 오른다.

한국 연극계의 '거장' 이윤택(63)이 각본을 쓰고 연출한 이 작품은 폭군으로 알려진 연산군을 개혁을 시도하지만 결국 좌절하는 인물로 그린다. 어머니 폐비 윤씨에 대한 그리움,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신하들, 성왕의 그늘에 가려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 연산군이 겪는 내적 갈등에 집중한다.

연산과 함께 극의 중심축으로 등장하는 녹수는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연산의 여자이자 연산에게 안식처가 되는 어머니 같은 여인으로 묘사되며 극은 두 사람의 사랑과 증오가 혼재하는 관계를 그린다.



이번 작품은 초연에서 대사를 제외한 무대, 의상, 음악, 연기 등 모든 것을 바꿔 완전히 다른 연출을 시도했다. 연기와 춤, 노래가 어우러지고, 가야금, 장구, 징 등 국악기 속에 판소리와 전통춤의 가락과 몸짓이 함께한다.

초연 때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배우 이혜영이 각각 열연했던 연산과 녹수는 배우 백석광(32)과 소리꾼 이자람(36)이 연기한다.

'판소리 브레히트', '사천가', '억척가' 등으로 잘 알려진 이자람은 녹수와 폐비 윤씨 1인2역을 소화하며, 음악감독과 작창도 맡았다. 백석광은 지난해 '혜경궁 홍씨'에서 광기 어린 사도세자를 연기해 호평받은 배우로, 국립극단 올해 시즌 단원이다. 이자람과 백석광은 실제 오랜 연인이기도 하다.



이윤택 연출은 18일 서울시 용산구 서계동 국립극단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2003년 재연 때는 초연 스타일을 그대로 보존해야겠다고 생각해서 무대까지 똑같이 했다"며 "하지만 지금은 정반대로 완전히 다르게 해야겠다고 생각해 대본만 그대로 두고 다 바꿨다"고 말했다.

"무대, 의상, 음악이 바뀌고 연기 패턴도 예전에는 굉장히 어둡게 갔다면 이번에는 상당히 차갑게 갔습니다. 예전에는 뜨겁게 몰아붙였다면 이번에는 조용하게 심리적 공간을 마련해나가면서 했죠."

이 연출이 이번에 완전히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은 작품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열망에서다.

"제가 죽어도 이 연극이 계속됐으면 합니다. 그런데 제 스타일대로 계속 하면 제가 죽으면 못하지 않겠습니까. 희곡은 영원히 남으니 대본만 빼고 다 바꾸고 스태프들이 한 것을 그대로 수용했습니다. 사실상 제가 연출한 것이 없어요. 연출가는 교통정리 정도만 했죠. 가능하다면 다음부터는 제가 연출을 안 했으면 좋겠어요."

이 작품이 탄생한 1990년대는 한국 연극의 정체성과 세계화를 강조하던 때였다. 따라서 한국적 색채도 강하고, 규모도 방대했다.

"그때는 연극에서 한국적, 민족적이라는 것을 주장해야 할 때였어요. 당시에 무대에만 1억원이 들었습니다. 모든 것이 전통적이고 대규모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 고민은 이것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입니다. 공연이 돼야 살아남을 수 있는데 다른 사람들이 이 희곡을 무대에 올릴 엄두를 못 내니…. 이 작품이 누구나 연출하고 만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계 연극 속에 한국 연극으로서 한국적이지만 현대적인 보편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연출하고 있어요. 그 결과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요."

주역 배우 두 사람은 모두 이윤택이 쓰고 연출한 연극 '혜경궁 홍씨'로 이번 작품과 인연을 맺었다.

백석광은 지난해 이 작품에서 사도세자 역할을 맡았고, 이자람은 연인을 응원하러 극장에 왔다가 이 연출과 처음 만났다.



"이자람씨가 어느 날 공연장에 떡을 들고 찾아왔는데 알고 보니 백석광 군의 애인이더라고요. 이번에 연산 역에 백석광 배우를 쓰겠다고 마음먹은 차에 원래 노래를 잘하던 기생이었던 녹수 역을 이자람 씨가 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겁니다. 음악은 원래 다른 분에게 맡기려고 했는데 이자람 씨가 출연한다니 음악까지 맡기면 어떻겠느냐고 해서 그분은 빠지고 이자람 씨가 다 맡게됐습니다."

이자람은 "제가 '팜므파탈' 이런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녹수 역을 제안하셨을 때 의아했다"며 "그런데 녹수는 젊은 매력으로 남자를 홀린 인물이 아니라 서른 살이 넘은 나이에 많은 것을 겪은 천민이었고, 기생 시험에 합격해 왕의 중요한 사람이 됐다는 것을 알게됐다"고 말했다.

이자람은 "녹수는 연산에게 결핍된 모성애를 채워주면서 열심히 들어주는 동지이고 노래로 위로하는 가인이라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다"며 "음악과 배우를 맡다 보니 공연이 다가올수록 연기에 좀 더 집중하고 싶은데 아직 다 해내지 못하고 있어 몸이 두 개였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번에 연인과 한 무대에 서는 소감도 밝혔다.

"우리가 이윤택이라는 큰 나무 밑이 아니면 언제 무대에 함께 서보겠으며, 우리 둘의 에너지를 조율하면서 작품을 만들어보겠나, 이건 기회다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 연애를 계속 하려면 앞으로 같이 작품 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에요."

백석광은 "이윤택 선생님은 전통예술과 연극예술 모두 섭렵한 분이기 때문에 이번이 아니면 저희 둘이 만날 기회가 없다고 판단해 함께 하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공연은 7월 1∼26일 명동예술극장. 관람료는 2만∼5만원. 문의 ☎ 1644-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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