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매출판인' 김홍민, 10년간 책과 놀아온 까닭은
"출판은 경제행위 그 이상의 무엇…문화 살려야"
에세이집 출간 이어 신간 기획에 출판사 8곳 공동 이색광고 참여 '눈길'
편집부
news@bujadongne.com | 2015-06-11 10:12:25
'야매출판인' 김홍민, 10년간 책과 놀아온 까닭은
"출판은 경제행위 그 이상의 무엇…문화 살려야"
에세이집 출간 이어 신간 기획에 출판사 8곳 공동 이색광고 참여 '눈길'
(서울=연합뉴스) 김중배 기자 = "한국의 출판계는 어느 순간부터 치명적인 손상을 입은 채로 오늘에 이르렀다. 그 손상으로 인해 출판이라는 행위는 '단순히 물건을 만드는 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 제조업'에서 '그저 책이라는 물건을 팔아먹을 뿐인 장사'로 전락하고 말았다."
튀는 기획력과 실행력으로 출판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어온 북스피어 대표 김홍민(39). 그가 지난 10년간의 이색 출판 이벤트의 경험 등을 모은 에세이집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어크로스)를 펴냈다. '야매', 근본 없음을 가장했지만, 돈벌이가 아닌 문화 창조로서의 책 만들기에 대한 열정이 뚝뚝 묻어난다.
책 만들기의 경험과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와 책 이야기 등이 에세이의 주된 내용이지만, 재미는 기대를 초월한다. "이런 출판기획자가 있었어?" 그를 모르는 독자들은 그같이 반응할 법하다. 이미 '김홍민'이라는 인물의 '실체'를 아는 독자들이라면 "참 오랫동안 아기자기하게도 놀았네"라며 한 번 더 치켜세울 판이다.
책 안에 메시지를 숨겨놓는 '이스터에그'에서부터, 스스로 망가지거나 광고 모델이 되는 걸 마다하지 않는 기행(奇行)들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독자들과 장난스럽게 호흡하면서도 그가 놓지 않은 건 "장르문학 전문 출판이라는 틀을 지키면서 좋은 책을 만들겠다"는 의지다.
이른바 '원기옥' 이벤트의 성공 사례는 그의 출판에 대한 열정이 빛을 발한 대목이다. 출판 마케팅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한 '사건'이기도 하다.
원기옥은 일본 만화 '드래곤볼'의 주인공 손오공이 악당에 대항하다 힘이 부치자 모두의 '기'를 모아 대응하는 '필살기'를 뜻한다. 김 대표는 일본 작가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 출간에 부족한 돈을 독자들을 상대로 끌어모으는 '크라우드펀딩' 이벤트 '원기옥'을 두 번 기획해 각각 5천만원과 8천만원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이는 애초 예상한 기간과 회의적 우려를 단번에 날려버린 '사건'이라 할 만했다. 이 대목에선 '야매' 사장의 표정도 자못 진지해진다. "참여한 이들은 그간 북스피어의 잡다한 이벤트로 인연을 맺은 독자들이었다. 그 세월이 8년이다. 이런 시간이 있었기에 그들도 선뜻 지갑을 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유치한 장난으로 치부할 일들이 모여 '문화'가 된 것이다.
"아아, 사람들아, 책 좀 사라." 소설가 김훈을 인용한 이 도발적 문구가 불쾌하게 다가오지 않는 건 그가 보인 책과 출판에 대한 열정 덕택이다. 저자는 국제 출판계의 '호구'로 여겨질만한 우리 출판계의 과도한 선인세 제공과 그에 대한 성공 부담이 사재기로 이어지는 연결고리에 대해 솔직한 자성과 비판도 토해냈다.
물론 진지함으로 일관하진 않는다. 타인과 구조를 탓하기보다 스스로의 세계로 우회해 새로운 길을 찾는 건 그만의 방식이다. "제가 보기에 재미있으면 책으로 만듭니다. '북스피어'처럼 '막돼먹은' 출판사가 하나쯤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북스피어는 오는 18일 10주년에 맞춰 미야베 미유키의 우리말 번역 신작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을 출간하고, 부록으로 부정기적으로 펴내온 장르문학 소식지 '르 지라시'(Le Zirasi)를 함께 제공한다. 20일에는 1박2일 일정으로 철원의 한 폐교를 빌려 장르문학부흥회 이벤트도 연다.
르지라시에는 마음산책과 사회평론, 바다출판사, 글항아리, 은행나무, 한빛미디어, 한스미디어, 휴머니스트 등 8개 출판사들이 흔쾌히 광고 협찬에 동의해 힘을 실었다. 광고 기준 또한 '잔망스럽고, 야매적일 것'이라고 하니 엄숙한 출판사들이 한껏 망가지는 모습들을 즐겨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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