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 15년> 경색된 남북관계…빛바랜 공동선언
남북 화해·협력 역사적 전환점…군사분야 성과 미진 지적도
정부 "남북 대화되면 6·15 선언 이행방안 논의할 수 있어"
편집부
news@bujadongne.com | 2015-06-11 08:15:00
△ 6ㆍ15 남북 공동선언을 기념해 미국 뉴욕 플러싱 노던 블러바드에 내걸렸던 대형 빌보드.
경색된 남북관계…빛바랜 공동선언
남북 화해·협력 역사적 전환점…군사분야 성과 미진 지적도
정부 "남북 대화되면 6·15 선언 이행방안 논의할 수 있어"
(서울=연합뉴스) 김호준 기자 = "우리에게도 이제 새날이 밝아온 것 같다. 55년 분단과 적대에 종지부를 찍고 화해, 협력, 통일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돌아왔다."
2000년 6월 15일 서울공항에 도착한 김대중 당시 대통령은 평양에서 열린 첫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이렇게 설명했다.
◇ 6·15 공동선언 계기 남북 교류·협력 봇물
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채택된 6·15 공동선언은 ▲ 통일 문제의 자주적 해결 ▲ 남측 연합제와 북측 낮은 단계 연방제의 공통성 인정 ▲ 이산가족 등 인도적 문제 조속 해결 ▲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제반 분야의 교류·협력 활성화 ▲ 당국 간 대화 개최 등 5개항으로 구성됐다.
공동선언 채택 이후 적십자 회담과 장관급 및 국방장관 회담 등 각종 대화채널이 가동됐고, 이산가족 상봉과 대북 인도적 지원, 개성공단 조성 및 금강산관광, 철도·도로 연결 등 각종 교류·협력 사업이 활발히 진행됐다.
그러나 2002년 6월에 발생한 제2연평해전 등 북한의 크고 작은 도발은 남북 화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기도 했다.
특히 2002년 10월 북한의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으로 불거진 2차 북핵 위기를 비롯해 2005년 2월 북한의 핵무기 보유선언, 2006년 10월 1차 핵실험 등 북핵 문제는 남북 교류와 협력의 심화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2007년 10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에서 2차 남북정상회담을 갖고 10·4 선언을 발표했지만, 이듬해인 2008년 2월 출범한 보수 성향의 이명박 정부는 '선(先) 핵 폐기' 원칙을 내세우며 이전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을 대폭 수정하기에 이른다.
◇ 천안함 피격사건 이후 남북관계 '암흑기'
이명박 정부가 비핵화 없이는 남북관계의 진전도 없다는 취지의 '비핵·개방·3000'을 제시하자 북한은 강력 반발하며 도발의 수위를 높여갔다.
북한은 2009년 2차 핵실험을 단행했고 이듬해인 2010년에는 천안함 피격사건(3월)과 연평도 포격도발(11월) 사건을 일으켰다. 천안함 피격사건에 책임을 물어 당시 정부가 취한 5·24 대북제재 조치는 남북 간 교류와 협력을 크게 후퇴시켰다.
2013년 2월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에 비해서는 다소 유연한 대북정책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앞세워 '드레스덴 선언'과 '통일 대박론' 등의 구상을 내놓았지만 남북관계의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지는 못하고 있다.
정부는 광복 70주년인 올해 5·24 조치 이후 처음으로 민간단체의 대북 비료지원을 승인(4월 27일)하고, 지방자치단체와 민간단체의 남북교류를 폭넓게 허용하겠다는 내용의 '민간교류 추진 관련 정부 입장'(5월 1일)을 발표하는 등 화해 몸짓을 했지만 북한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게다가 지난달 정보당국이 북한의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숙청 사실을 공개하고 박 대통령이 이를 근거로 '북한 공포정치'를 언급하자, 북측은 입에 담기 어려운 '험악한 표현'까지 동원하며 박 대통령에 대한 비난 수위를 높이고 있다.
2008년 이후 7년 만에 성사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6·15 남북공동행사도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무산됐다.
지난달 5~7일 남북 민간단체가 서울에서 6·15 공동선언 15주년 행사를 개최하기로 잠정 합의했으나 이후 6·15 행사의 성격과 8·15 공동행사 개최 장소 등을 둘러싼 논란 끝에 북측이 지난 1일 남측에 공동행사의 사실상 무산을 통보했다.
이에 따라 광복 70주년·분단 70주년을 계기로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던 8·15 남북공동행사에도 북측이 호응할 가능성이 작아졌다.
◇ 정부 "남북 대화되면 6·15 선언 이행방안 논의할 수 있어"
정부는 북측에 당국 간 대화채널의 가동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으나 북측은 남측이 먼저 5·24 대북제재 조치를 해제하고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통일부는 11일 "기본적으로 6·15, 10·4 선언을 포함한 남북 간 모든 합의는 존중돼야 한다"며 "다만, 합의사항의 구체적인 이행을 위해서는 먼저 남북 당국 간 협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당국 간 대화가 이뤄지면 5·24 조치를 포함해 모든 현안을 논의할 수 있다"며 "남북 기본합의서와 6·15 및 10·4 선언 등의 기본 정신을 존중하며, 더 나아가 (남북대화가 되면) 구체적인 이행방안도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다만, 어떤 합의사항은 논란이 많은 것도, 예산이 많이 들어가는 것도 있고 합의 당시와 상황이 달라진 것도 있다"며 "그런 부분은 만나서 이야기를 더 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입장"이라고 말했다.
6·15 공동선언 때와 달리 북한이 3차례의 핵실험 이후 핵 능력을 고도화하고 있는 점은 남북관계의 진전을 옥죄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북한이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사출시험에 성공했다고 최근 공개하면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조성되기도 했다.
◇ "기존 남북합의 존중하면서 새로운 남북 정상선언도 도출해야"
이런 점 때문에 6·15 공동선언이 남북 화해와 협력의 물꼬를 텄지만, 군비감축 등 군사분야에선 성과가 미진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게다가 남북 경제협력을 통한 자금으로 북한이 핵개발을 진행했다는 '퍼주기' 논란이 제기되면서 남남갈등이 초래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현 정부가 지난 정부의 남북 합의를 존중하는 것은 물론 유연한 대북정책을 통해 변화된 상황에 맞는 남북관계의 새로운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박근혜 정부는 6·15 공동선언을 뛰어넘는 새로운 남북정상 선언을 도출하겠다는 각오로 통 크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진보 정부 때 나온 두 차례의 남북 정상선언과 보수 정부의 새로운 남북 정상선언은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평화를 이끄는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 교수는 "북한 김정은 정권도 6·15 공동선언의 계승, 발전만 운운하지 말고 대남 비방을 중단하고 남북 당국 간 회담과 비핵화를 위한 6자 회담에 적극 호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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