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숙선 "삼풍의 아픔, 판소리로 치유됐으면"

삼풍백화점 붕괴 실화 담은 창작판소리 '유월소리'

편집부

news@bujadongne.com | 2015-06-09 17:18:27

△ 창작판소리 '유월소리'의 오세혁 작가·안숙선 명창 (서울=연합뉴스) 삼풍백화점 붕괴 20주년을 맞아 당시 사고의 기억과 아픔을 소재로 한 창작 판소리 '유월소리'의 오세혁 작가(왼쪽)와 안숙선 명창. 2015.6.9 << 서울문화재단 제공 >> photo@yna.co.kr

안숙선 "삼풍의 아픔, 판소리로 치유됐으면"

삼풍백화점 붕괴 실화 담은 창작판소리 '유월소리'



(서울=연합뉴스) 김정은 기자 = "삼풍백화점 붕괴는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아픔이 판소리로 조금이나마 치유가 됐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1995년 6월 29일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에 있던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지 올해로 20년. 내달 3일 당시 민간구조대의 실화를 담은 창작판소리 '유월소리'가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공개된다.

이번 작품의 소리와 작창을 맡은 안숙선(66) 명창은 9일 서초동 국립국악원에서 기자들과 만나 "작은 것이라도 원칙을 항상 지켜야 이런 마음 아픈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며 유가족에게는 작은 위로가 되고 사회에는 경종을 울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세월호도 그렇고 조그만 일을 놓쳐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볍게 생각한 것들이 큰일이 돼버린 거죠. 이에 경종을 울릴 수 있다면 소리하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서 참여하게 됐어요."

극작가 오세혁(34)이 당시 민간구조대원이었던 최영섭 씨의 증언을 토대로 대본을 쓰고 연출했다.

삼풍백화점 붕괴 직후 생존자를 구하려고 무너진 건물 지하로 들어갔던 민간구조대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들이 라면 상자에 이름과 주민번호, 연락처를 적은 채 목숨을 걸고 구조활동을 했던 일화와 암흑 속에서 생존자를 찾기 위해 내던 망치 소리, 생존자들이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며 내던 소리 등 당시 참사현장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소리'들을 집중적으로 그렸다.

이 공연은 서울문화재단이 2013년부터 시작한 '메모리인(人) 서울 프로젝트'의 하나다.

서울에 대한 시민의 기억을 목소리로 채록해 사장될 수 있는 미시사적 이야기를 발굴하는 사업으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생존자와 구조자, 언론인, 동네 주민, 행인 등으로부터 당시의 기억을 취합해 기록으로 남겼다.

서울문화재단에서 삼풍백화점을 소재로 한 창작판소리 작품 의뢰를 받은 오 작가는 이 채록을 모두 본 뒤 생존자나 유가족이 아닌 민간구조대의 이야기를 선택했다.

"생존자와 유가족을 아무리 잘 알아도 우리가 쉽게 알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그분들을 직접 만나, 그 거리를 좁히지 않는 한 그분들의 슬픔을 감당할 수 없겠다, 함부로 다룰 수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목수, 회사원, 학생, 신문배달부 등 민간구조대원들이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시민이었다는 점도 그의 마음을 강하게 끌었다.

"민간구조대를 보면서 놀라웠던 것이 다 보통 사람들이었다는 겁니다. 지나가다 뉴스를 듣고 현장에 와봤는데 너무 끔찍하니까 돌아가지 않고 그 속에서 계속 구조활동을 한 거죠."

오 작가는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위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놀랍다"며 "곧 건물이 무너진다고 하는데도 저 같은 사람은 이해가 안 갈 정도의 헌신성을 보여준 그분들이 고맙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오 작가가 이번 작업에 참여하게 된 것은 지난해 세월호 참사의 영향이 컸다. 그가 대표로 있는 '정의로운 천하극단 걸판'이 경기도 안산에 있어 이 비극을 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작년 이후로 상상해서 글을 쓰는 일에 지쳐 있었어요. 이 시대에 얼마나 엄청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상상으로 글을 써야하나, 이제 상상이 아니라 사람들을 직접 만나 생생한 이야기를 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참담한 현실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데는 고통이 따랐다.

"4월 초에 80여 분 짜리 구술채록을 받았는데 읽고 있으면 너무나 괴로웠어요. 이런 이야기를 한 번에 읽고 후다닥 쓰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더군요. 그래서 5월 말이 돼서야 대본을 완성했습니다."

오 작가는 "'힘들거나 고통스러운 사람을 기억해주는 것은 언제나 힘들거나 고통스러운 사람들 밖에 없다'는 말이 있다"며 "하지만 우리가 잊지않고 기억하는 가운데 세상이 좋아지면 그때 해결하지 못했던 것들을 풀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이 작품을 통해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안 명창도 "이번 작품에서는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참상 속으로 들어가는 구조대의 모습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목숨을 걸고 생존자를 구한 이분들의 경이로운 모습을 떠올리면서 아픈 기억을 조금이나마 씻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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