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채권단 구제금융 협상 막판 충돌…"채권단 제안 거부"
그리스 연금·부가세 등 '금지선' 고수…채무재조정도 이견
국민 절반 "금지선 넘어도 합의해야"
편집부
news@bujadongne.com | 2015-06-05 19:56:37
△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오른쪽)과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EPA=연합뉴스)
그리스-채권단 구제금융 협상 막판 충돌…"채권단 제안 거부"
그리스 연금·부가세 등 '금지선' 고수…채무재조정도 이견
국민 절반 "금지선 넘어도 합의해야"
(이스탄불=연합뉴스) 김준억 특파원 = 그리스와 국제채권단의 구제금융 협상이 막바지 국면에서 거센 충돌을 빚고 있다.
그리스와 채권단의 일원인 국제통화기금(IMF)은 IMF 부채를 이달 말에 일괄 상환하기로 동의해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를 넘기고 협상 시한도 벌었다.
그러나 긴축 반대를 공약해 집권한 급진좌파연합(시리자) 정부는 채권단의 최신 제안 중 연금과 부가가치세 등 '극단적 제안'은 거부한다며 '금지선'(red line)을 고수했다.
또 그리스는 지난 1일 제출한 47쪽 분량의 협상안에서 국가채무 부담을 줄이는 채무 재조정 방안을 제안했지만 채권단이 지난 3일 제시한 5쪽짜리 문서에는 이 부분이 언급되지 않았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는 5일(현지시간) 의회에 이런 협상 내용을 보고하고 대안을 논의할 예정이나 시리자 의원들도 조기총선을 요구하는 등 국내 정치권의 반발도 거세다.
◇그리스 정부, 채권단 '5쪽 제안' 거부…협상 또 '쳇바퀴'
그리스 ANA-MPA 통신 등에 따르면 그리스 정부는 치프라스 총리가 지난 3일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 회동에서 받은 채권단의 5쪽 분량의 '그리스-정책 약속들'이란 협상안을 거부하기로 결정했다.
그리스 관리는 치프라스 총리 주재로 전날 밤 관계 장관 등이 참여한 회의에서 채권단 제안 가운데 기초재정수지 목표치를 제외한 제안은 수용하지 않기로 했다고 전했다.
치프라스 총리는 이 회의에서 "극단적인 제안들은 수용할 수 없다. 그리스 국민이 지난 5년 동안 상당한 고통을 겪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며 채권단의 긴축 정책을 거부했다.
그리스는 며칠 안에 자문단의 의견 등을 수렴해 이 제안에 대응방안을 확정해 EU 관리들에게 통보할 예정이나 치프라스 총리와 융커 위원장 간 차기 회동 일정은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유로존 관리들은 치프라스 총리와 융커 위원장이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열리는 오는 9일 전에는 만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앞서 치프라스 총리는 지난 3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융커 위원장, 유로존 재무장관 협의체인 유로그룹의 예룬 데이셀블룸 의장과 회동하고서 연금과 부가세 개편 등과 관련한 제안을 수용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그리스는 지난 2월 협상 초기부터 저소득층의 연금 삭감과 부가세 세수 증대는 빈곤을 악화한다며 '금지선'으로 설정한 반면 채권단은 예정대로 부채를 상환하려면 재정수지를 개선해야 한다며 긴축 정책을 요구하는 대립이 되풀이되고 있다.
채권단의 협상안은 올해 국내총생산(GDP)의 0.5%만큼 연금 지급을 삭감해야 한다며 사회연대보조제도(EKAS)인 저소득 연금생활자에 지급하는 보충연금을 폐지하라고 요구했다.
채권단은 또 부가세 세수를 GDP의 1%만큼 늘리라며 부가세율 체계를 현행 3단계(23%, 13%, 6.5%)에서 2단계(23%, 11%)로 개편하고 전기요금의 부가세율을 13%에서 23%로 높이는 등의 방안을 내놨다.
반면 그리스는 연금 삭감에 반대하고, 부가세도 3단계 세율을 유지하되 세율을 각각 23%, 11%, 6%로 개편해 전기요금에 11%를 적용하는 등의 방안을 제시했다.
이처럼 소득과 무관하게 적용되는 간접세 인상은 제한하되 고소득층의 사회연대세 인상과 대기업의 특별부과금, 사치세(요트, 대형 승용차, 수영장 등) 인상, TV 광고세 인상 직접세 증대방안을 내놨다.
아울러 그리스는 오는 7월부터 내년 3월 말까지 유럽중앙은행(ECB)와 IMF의 채무구조를 재조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는 IMF 부채 잔액의 50%를 이 기간에 상환하고 나머지는 그리스의 선택에 따라 단계적으로 상환하며 ECB의 양적완화 정책인 국채매입프로그램에 그리스 국채를 포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아울러 유럽투자은행(EIB) 등이 내년부터 2021년까지 그리스의 경제성장 정책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협상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채권단의 협상안에는 채무 재조정과 EIB 지원 등의 항목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처럼 양측의 견해차가 커 협상은 현행 구제금융 프로그램의 종료 시점이자 IMF 부채 일괄상환일인 오는 30일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시리자 내부 반발도 거세…국민 절반 "금지선 넘어도 합의하라"
치프라스 총리는 이날 오후 6시 최근 협상 진행상황을 보고하기 위해 의회에 출석하기로 했다.
야당은 정부의 협상 지연을 비판하고 시리자 내부에서는 정부가 금지선을 물렸다고 비난하고 있어 이날 의회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특히 시리자의 강경파인 '좌파연대' 인사들은 채권단 제안을 수용하면 선거공약을 어기는 것이기 때문에 조기총선을 치러 다시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야 한다고 반발했다.
디미트리스 스트라툴리스 사회안전부 차관은 "채권단이 이런 '협박 패키지'를 완화하지 않으면 정부는 조기총선이란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니코스 부치스 내무장관도 채권단의 이번 제안은 전 정부가 수용한 현행 구제금융 협약보다 훨씬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시인했다.
다만 이날 발표된 그리스 여론조사업체 알코의 설문결과 시리자의 지지율은 31.4%로 제1야당인 신민당(20.4%)을 크게 앞섰으며 신민당은 조기총선에 강하게 반대했다.
아울러 알코의 설문결과 응답자의 45%는 '금지선'을 넘더라도 합의하기를 바란다고 답했고 74%는 그리스가 유로존에 남아야 한다고 밝혀 합의를 원하는 여론이 다수였다.
반면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탈퇴해야 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18%에 그쳤다.
그리스 경제부 게오르게 스타타키스 장관은 이날 BBC라디오에 출연해 채권단의 제안을 수용할 수 없지만 가능한 빨리 합의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스타타키스 장관은 또 "시리자는 그리스가 유로존 안에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더 나은 협상을 하라는 권한을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았다"며 유로존 탈퇴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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