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징용의 흔적은 어디에"…불편한 역사 감춘 군함도

안내 팸플릿 "영화관·파친코도 있었다"며 전후 생활수준 높았던 곳으로 묘사

편집부

news@bujadongne.com | 2015-06-05 17:41:50

△ 군함도에서 현지 업체 직원이 섬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조선인 징용의 흔적은 어디에"…불편한 역사 감춘 군함도

안내 팸플릿 "영화관·파친코도 있었다"며 전후 생활수준 높았던 곳으로 묘사







(하시마=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우와, 대단하다"

5일 오후 일본 하시마(端島·일명 '군함도')에 상륙한 관광객들은 감탄사를 내뱉으며 연방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 노동이 이뤄진 현장이었지만 이날 상륙 투어에서 이를 알 수 있는 단서는 없었다.

군함도는 일본의 에너지 산업을 떠받친 해저 탄광이 있던 곳이거나 광산 노동자들이 목숨을 걸고 전후 공업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현장 정도로 소개됐다.

이날 둘러본 곳에는 출입제한 구역 안내판 외에 섬의 역사나 시설에 관한 별다른 설명문이 없었다.

결국, 방문객은 유람선 업체 측이 나눠준 안내문·직원의 설명·배 안에서 상영하는 홍보 영상 등을 통해 군함도에 관해 알게 되는데 여기서 조선인 징용에 관한 내용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대부분의 설명은 전후 시기에 관해 집중됐다.

그래서인지 군함도 징용 체험자가 언급한 매질과 배고픔은 애초에 등장하지 않았고 1974년 폐광 전까지 광산업 덕에 생활수준이 높은 지역이었다는 식이 정보가 많았다.

업체 측이 나눠준 팸플릿은 섬 생활에 관해 '학교나 병원, 상점 외에도 영화관이나 파친코장 등 오락시설도 갖춰져 있었다'고 설명했다.

현장에서 안내를 담당한 젊은 직원은 군함도의 광부들이 힘든 일은 하기 때문에 통상 근로자보다 높은 급여를 받았고 폐광 전 유인도였을 당시에는 이 섬의 TV 보급률이 100%에 달했다고 예를 들기도 했다.

이 직원은 일본 최초의 철근 콘크리트 아파트, 군함도의 자연재해, 좁은 섬에서 이뤄진 특수한 생활 방식 등 미리 외운 듯한 내용을 쉴 새 없이 쏟아냈고 설명이 그치면 방문자들은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폐허가 된 섬에 서린 조선인 징용 노동자의 한을 웃고 즐기는 관광객 사이에 풀어놓기는 쉽지 않은 분위기였다.

현장에서 이뤄지는 전후 중심의 설명은 일본 정부가 1850∼1910년으로 시기를 한정해 군함도를 세계유산으로 추천한 것이 자연스럽지 않다는 점을 명확히 드러내고 있었다.





1시간가량 이어진 섬 상륙은 업체가 미리 준비한 대형 날짜 간판 앞에서 희망자들이 단체로 인증 사진을 찍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나가사키(長崎) 항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도호쿠(東北) 지방에서 온 일본 여대생에게 '혹시 조선인이 일제 강점기 때 군함도에서 강제 노동을 했고 이 가운데는 목숨을 잃은 이들도 있다는 사실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다소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이날 상륙 중에 설명했던 직원에게 조선인 강제 노동에 관해 언급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자신이 안내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에둘러 답했다.

그는 이를 소개하는 것이 좋은지 기자에게 의견을 구했다.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알리면 좋겠다'는 취지로 조언했더니 덕분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됐다고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중년의 다른 직원은 팸플릿은 시에서 제작한 것이라서 어쩔 수 없지만, 자신이 안내를 담당할 때는 조선인 징용에 관해 설명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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