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더불어 같이 살아요"…SBS '풍문으로 들었소'
2일 11.7%로 종영…상류층과 서민층의 욕망 나란히 풍자하며 유종의 미
편집부
news@bujadongne.com | 2015-06-03 10:42:15
"우리 더불어 같이 살아요"…SBS '풍문으로 들었소'
2일 11.7%로 종영…상류층과 서민층의 욕망 나란히 풍자하며 유종의 미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아버지와는 다른 길을 가보겠습니다."
한인상(이준 분)의 이런 결기가 얼마나 오래갈지는 모르겠다. 그는 기껏해야 스무 살 언저리다.
20대에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닌 사람은 심장이 없는 것이고, 40대에도 마르크스주의자인 사람은 뇌가 없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듯 한인상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는 누구도 모른다.
드라마는 여기서 끝맺음을 했다. 그 이후는 시청자의 몫이다. 한인상의 미래는 드라마 종영과 함께 화면 밖을 나와 시청자의 미래가 됐다.
재산이 도대체 얼마일지 가늠하지 못하는 대한민국 최상류층의 어린 상속자 한인상은 그 막대한 재산을 포기하고, 짐 싸들고 '쥐뿔도 없는' 처가에 들어갔다.
마지막 장면에서 한인상의 아버지 한정호(유준상)는 고래등 같은 으리으리한 집에 홀로 들어섰다. 집안에는 인기척도, 온기도 없다. 가족마저 다 떠났다.
반면,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비좁고 누추한 한인상의 처가는 구들장이 무너질 만큼 사람들로 북적댄다. 다양한 연령대, 다양한 사연을 가졌지만 마음이 통하는 타인들이 모여 밥을 나눠먹으며 하하호호 웃는다. 산해진미는 없지만 같이 밥을 먹는 게 즐거운 정다운 식구(食口)들이다.
그간 익숙하게 보아온 '바람직한 결말'의 풍경이다. 행복은 돈으로 사는 게 아니라는 '인간적인 결말'에 대한 바람이다.
문제는 화면 속 이야기가 현실이 됐을 때는 이야기가 많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말이다.
SBS TV 월화극 '풍문으로 들었소'가 지난 2일 30부의 긴 여정을 마쳤다.
지난 2월23일 7.2%로 출발한 이 드라마는 마지막회에서 11.7%를 기록하며 경쟁작인 MBC TV '화정'(10.2%), KBS 2TV '후아유-학교2015'(7%)를 꺾고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
30부 평균 시청률은 10.3%였으며, 자체 최고 시청률은 12.8%(4월21일)로 집계됐다.
'아내의 자격'과 '밀회'를 통해 가진 자와 지식인층의 오염된 도덕성과 위선,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까발렸던 정성주 작가-안판석 PD 콤비는 '풍문으로 들었소'에서 그같은 주제의식을 한층 강화해 우리 사회 갑을 더욱 강렬하게 풍자했고, 더불어 을의 '꼴불견'도 꼬집었다.
대대손손 모든 것을 가지고 누려온 최상류층들의 선민의식, 귀족의식을 조롱했고 그들이 부를 축적하고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그 좋은 머리를 굴려 저질러온 온갖 비리와 편법, 야합과 관행을 낱낱이 고발했다.
드라마는 10대에 사고 친 아들 덕에 일찍 손자를 본 한정호가 뒤늦게 바람이 나 정신 줄을 놓고, 그 어떤 중대한 일보다 자신의 머리 정수리에서 머리카락이 빠져나가는 현실에 괴로워하며, 점잖은 척은 혼자 다 하다 난데없이 분노 조절을 못해 날뛰는 모습 등을 통해 낄낄 웃음이 터져 나오는 코미디를 펼쳐보았다.
또 한정호의 한 떨기 수선화같이 우아한 아내 최연희(유호정)와 그의 '초록은 동색'인 친구들이 주고받는 유치찬란한 말씨름과 가식적인 행동, 진심이라고는 느낄 수 없는 서로에 대한 배려 역시 우스꽝스럽게 그렸다.
하지만 그러한 풍자가 주는 웃음 뒤에서 부지런히 하고자 하는 말을 풀어내며 부정부패로 견고해진 기득권을 향해 계속해서 화살을 날렸다.
아무리 많은 화살을 날려도 기득권을 무너뜨릴 수는 없고, 처음엔 패기와 의욕에 넘쳤던 궁수들도 제풀에 지쳐 "이래서 안되는 싸움이라고 하는구나"라며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지만 드라마는 그러한 화살들이 기득권에 작은 균열을 조금씩 내는 과정에 '조용히' 의미를 부여했다.
그리고 드라마적 판타지로 마지막에 이상적인 공동체를 보여주며 더불어 사는 사회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인상은 "저는 이제 상속자도 아니고 어린애도 아닙니다"라는 말로, 결국은 궁핍한 생활을 못견디고 아들이 다시 자신의 밑으로 기어들어올 것이라 여겼던 아버지 한정호에게 제대로 한방을 날렸다. 지켜야할 게 많을 때는 비겁해질 수밖에 없지만, 잃을 게 없을 때는 자유롭고 떳떳해질 수 있다고 한인상은 판단했고 그 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런 그의 옆에는 '한정호 밑에서 연봉 10억짜리 노예로 사느니 월급 200만원을 받아도 자유롭고 정의롭게 살겠다'는 사법연수원 수석 출신 변호사와 고액 과외로 상당한 재산을 축적했으나 이제는 돈이 아닌 세상에 눈을 뜨고 살아보겠다는 한인상의 개인 교사, 노후를 위해더럽고 치사한 꼴도 계속 참고 살아보려 했지만 결국 인간다운 삶을 선택한 집사-가정부 부부 등이 있다.
하지만 드라마는 한쪽만 풍자하지는 않았다. 먹고 살기 힘들어 사회의 부조리에 눈 감고 귀 막고 사는 우리네의 모습과 뒤로는 욕하면서도 상류사회를 끊임없이 동경하고 썩은 밧줄이라도 잡고 싶어하는 심리를 조롱했다.
한정호의 며느리가 되면서 서봄(고아성)이 잠시 '갑질 코스프레'에 취했던 모습, 서봄의 언니가 사돈댁의 후광에 편승하려 기를 썼던 모습 등을 가차없이 풍자했다.
또한 '손수 지은 감옥에 갇혀있는 한정호'를 불쌍하다고 일갈하면서도, 끝까지 서봄의 언니가 상류사회와 신분상승에 대한 욕망을 놓지 못하고 고민하는 모습을 통해 '을'에게도 혀를 찼다.
88만원 세대에게, 미래가 보이지 않는 세대에게 한인상과 서봄 같은 선택은 그림의 떡일 수 있다. 달콤한 유혹을 거부한채 잘못된 것을 고발하고 '옳은' 선택을 한 한인상과 서봄에게 드라마는 '보상'으로 산타클로스 같은 존재들을 선물했지만, 현실에서는 그것을 기대하기 힘들다.
하지만 그래도 한 번쯤 다시 생각해보자고 드라마는 말했다. 갑이든 을이든 더불어 사는 사회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자고 말이다. "같이 살자."
[ⓒ 부자동네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