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과수 60돌> ②DNA·모발·영상·음성…뭐든 다 분석한다
부검·검안 비중 2.1% 불과…증거물·영상·음성 분석 주요 업무
2006년 서래마을 영아살해 사건서 유전자 분석능력 전세계 과시
편집부
news@bujadongne.com | 2015-05-28 05:30:03
△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음성 분석 장치로 성문을 구별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②DNA·모발·영상·음성…뭐든 다 분석한다
부검·검안 비중 2.1% 불과…증거물·영상·음성 분석 주요 업무
2006년 서래마을 영아살해 사건서 유전자 분석능력 전세계 과시
(서울=연합뉴스) 구정모 기자 =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라고 하면 법의학자들이 음침한 시신을 부검하는 장면을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그것은 오해다.
1955년 3월25일 개소할 당시 국과수 업무는 부검이나 혈액형 감정과 같은 단순 감정에 그쳤다. 하지만 이후 다양한 분야로 감정 분야를 넓혀 지금은 1센터, 7개과의 종합적인 법과학 감정 시스템을 갖췄다.
28일 국과수에 따르면 2005∼2014년 분야별 감정처리 건수를 보면 부검·검안이 차지하는 비율은 2.1%에 그쳤다.
국과수가 가장 많이 처리한 업무는 유전자(DNA) 분석으로, 전체 업무의 31.7%에 달했다. 그 외에 혈액형(16.9%), 혈중 알코올(16.6%), 마약류(9.9%) 분석 업무가 뒤를 이었다. 감정 건수로 보자면 국과수의 주된 업무는 유전자 분석이라고 할 수 있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감정 의뢰가 부쩍 많아진 영상분석(2.6%)과 교통사고(1.9%) 분석도 비중이 커지고 있다.
유전자 분석은 시료에서 추출한 유전자를 분석·대조해 동일성 여부를 판단하는 업무로, 국과수의 법유전자과 유전자분석실에서 수행한다.
DNA는 인간의 모든 곳에 존재하고 미량의 체액이나 모발 등에서도 검출돼 유전자 분석은 대형사고 피해자나 강력범죄 용의자의 신원을 확인하는 데 유용하게 활용된다.
유전자 분석은 1992년 의정부경찰서가 의뢰한 미성년자 성폭행 사건에 처음 적용된 이후 각종 강력사건에서 범인을 검거하는 데 한몫을 해냈다.
2006년 7월에 발생한 서래마을 영아 살해 사건은 국과수의 유전자 분석능력이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마 강호순 사건 때는 여대생을 살해한 혐의로 붙잡힌 강씨의 점퍼에서 국과수가 과거 실종사건 피해자의 DNA를 발견, 강씨가 여대생뿐 아니라 부녀자 6명을 추가로 납치·살해했다는 자백을 받아내는 데 공을 세우기도 했다.
당시 강씨의 점퍼에 묻은 추가 피해자의 혈흔은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나노그램(10억분의 1g) 단위의 극소량이었다.
국과수는 이외에도 각종 여객기 추락사고, 대구 지하철 화재 사건, 이천 냉동창고 화재, 용산 참사, 서남아시아 쓰나미 등 대형 사건·사고에서 유전자 분석을 통해 피해자의 신원을 신속히 밝혀내기도 했다.
국과수는 2009년 12월 'DNA 신원확인 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 제정됨에 따라 범죄자의 DNA와 미제사건 용의자의 DNA 등을 보관해 오고 있다.
국과수의 화학분석과도 과학수사에 필요한 대표적 분야인 증거물 분석 작업을 맡고 있다. 사건·사고 현장에서 수거된 손톱, 섬유, 페인트, 토양 등에 숨어 있는 진실을 파헤치는 고단한 업무다.
동위원소와 미량원소 함량으로 원료와 제조환경에 따른 '화학적 지문'을 감정해 증거물이 어떤 물건인지, 어떤 환경에 있었는지 분석하는 작업은 사건 해결의 큰 단초를 제공한다.
2010년 12월 성탄절을 앞두고 빵집 주인이 경쟁 업소를 음해하려고 저지른 이른바 '쥐식빵' 사건은 화학분석과의 활약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다.
쥐식빵에 들어 있는 밤, 땅콩, 빵속 등 동위원소비를 분석, 문제의 식빵이 제보자의 제과점에서 만들어졌다는 결론을 내려 제보자의 자작극을 밝혀내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이에 앞서 2008년 숭례문 방화사건 때는 용의자의 신발에서 숭례문 누각 페인트를, 옷에서 인화성 물질을 검출해 사건 해결의 핵심 단서를 제공하기도 했다.
약독마약과도 강력사건 수사에 적지 않은 역할을 한다.
변사체에서 의약품, 독극물, 농약 등이 남아 있는지 감정해 사인 규명에 일조한다. 부검결과 외관상 사인이 나오지 않으면 약독물에 의해 숨졌을 개연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가수 김성재씨 사망 사건 당시 김씨 사망에 동물마취제가 사용된 것을 밝혀낸 곳이 바로 약독마약과다.
약독마약과는 아울러 가짜 참기름과 같은 불량 식품을 가려내는 일도 한다.
폐쇄회로(CC)TV와 블랙박스 등이 범죄수사에 많이 활용됨에 따라 디지털분석과도 바빠지고 있다.
디지털분석과는 필적이나 도장의 위조 여부를 판명하는 전통적 업무뿐 아니라 CCTV 등 영상과 음성을 분석하거나 디지털 기기의 데이터를 복구하는 일도 맡고 있다.
작년 송파 버스추돌 사고, 2012년 강남 쇠구슬 무차별 난사 사건, 2013년 인천 모자 실종 사건 등에서 디지털분석과가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특히 2008년 불법조업 단속 중 중국 선원이 휘두른 둔기에 맞아 순직한 해경 박경조 경위 사망 사건 당시에는 흔들리는 해경 화면을 보정해 숨진 해경을 누가 때렸는지를 특정함으로써 범인의 자백을 받아내는 데 일조했다.
거짓말 탐지, 법최면 등을 통해 범죄 분석을 하는 법심리과도 국과수의 주요 업무로 평가받고 있다.
국과수는 1980년 '거짓말탐지운용규정'을 제정하고서 1981년 이윤상군 유괴 사건 때 최초로 거짓말 탐지 기술을 활용했다.
2010년에는 세계에서 최초로 거짓말탐지 의자를 개발하기도 했다. 기존 거짓말탐지기가 자율신경계의 변화를 이용한 것이라면 이 의자는 근육이 수축·이완하는 정도를 측정해 피조사자가 진실을 말하는지를 판단한다.
최면상태에서 사건·사고 당시 기억을 떠올리게 해 수사의 단서를 확보하는 법최면은 1999년부터 본격화됐으나 최근 CCTV가 많아짐에 따라 활용도가 다소 떨어지고 있다.
[ⓒ 부자동네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