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극에 찍힌 허우샤오셴의 낙관 "내 시선 변함없어"(종합)
'섭은낭'으로 칸 영화제 경쟁부문 초청
편집부
news@bujadongne.com | 2015-05-22 06:57:16
무협극에 찍힌 허우샤오셴의 낙관 "내 시선 변함없어"(종합)
'섭은낭'으로 칸 영화제 경쟁부문 초청
(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대만의 대표적인 거장으로 꼽히는 허우샤오셴(侯孝賢)이 9세기초 당(唐) 시대를 배경으로 여성 자객의 이야기를 그리는 영화 '섭은낭'(The Assassin)을 들고 프랑스 칸을 찾아왔다.
섭은낭은 어릴 적 비구니가 된 공주에 의해 납치돼 부패한 관리들을 처단하는 살수(殺手)로 키워졌다. 철저히 자객으로 살아가던 섭은낭(수치)은 지역 군주(장천)를 암살하라는 임무를 받으면서 변화의 계기를 맞는다.
허우 감독은 관조하듯이 멀리서 대상을 바라보는 정적인 시선으로 잘 알려진 터라 무술 사극이라는 장르는 뜻밖의 선택이다.
칸 국제영화제 공식 경쟁 부문에 초청돼 20일 저녁(현지시간) 처음 공개된 '섭은낭'은 결과적으로 허우샤오셴다운 영화였다. 흑백으로 찍은 프롤로그부터 중국의 색채를 또렷하게 담은 궁중 장면들까지 허우샤오셴의 피가 흐르지 않는 곳은 없다.
건조하면서도 깊은 시선, 절제됐으면서도 아름다운 화면은 여전하다.
'비정성시', '빨간 풍선', '카페 뤼미에르', '쓰리 타임즈' 등을 통해 그는 현대극이든 시대극이든, 대만 영화든 외국어 영화든 관계없이 자신만의 색깔을 보여줬고 이번 영화에도 허우샤오셴의 낙관을 확실히 찍어놓았다.
21일 오후 칸의 한 카페에서 만난 허우 감독은 "이번 작업도 전작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며 "무술 영화거나 아니거나 나의 눈으로 본다는 점은 같기에 내 눈에 진짜로 느껴지는가, 가짜로 느껴지는가에 따라 장면 장면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 영화는 짧은 전설이나 민담 등을 담아 중국 환상문학의 원류로 꼽히는 당 시대 전기(傳寄) 중 '섭은낭' 편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자객의 이야기인 만큼 검술을 다투는 장면이 있기는 하지만, 무협극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현실성 없는 무술 장면은 찍고 싶지 않았다"며 "모든 인물이 리얼리즘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바랐기에 일반적인 무협영화에 나오는 움직임을 만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뚜렷한 줄거리를 가진 무협 사극임에도 배우들을 클로즈업으로 잡는 장면은 거의 등장하지 않으며 대사도 최대한 제한됐다.
카메라는 멀리서 배우들이 조곤조곤 대화하고 조용히 움직이는 모습을 바라본다.
이번 영화는 '밀레니엄 맘보' 이후 그의 뮤즈가 된 수치(舒淇)가 자객으로 변신한다는 점에서도 주목받았다.
수치와의 작업을 계속하는 데 대해 허우 감독은 "그녀의 성품 때문"이라며 "실제 생활에서도 독립적이고 고독한 성격을 지닌 배우"라고 말했다.
허우 감독은 이번 영화를 찍을 당시 수치에 얽힌 일화도 소개했다.
그는 "섭은낭의 '섭'은 성씨이기도 하지만 '듣는다'는 뜻도 지닌다"며 "은낭이 귀를 열고 누군가를 죽이러 간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그런데 수치는 고소공포증이 있다"면서 "은낭이 눈과 귀를 열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모습을 표현하려 했는데 불가능해서 그 부분은 고쳐야 했다"며 웃었다.
허우 감독은 '비정성시'로 1989년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희몽인생'으로 1993년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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