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점 찍은 칸 영화제…"여성·가족에 주목하라"
'캐롤' '사울의 아들' '내 어머니' 호평…한국영화 3편 상영 마쳐
필름마켓 올해도 성황…한국 수입 경쟁 과열
편집부
news@bujadongne.com | 2015-05-20 11:37:20
정점 찍은 칸 영화제…"여성·가족에 주목하라"
'캐롤' '사울의 아들' '내 어머니' 호평…한국영화 3편 상영 마쳐
필름마켓 올해도 성황…한국 수입 경쟁 과열
(칸=연합뉴스) 김지연 기자 = 세계 최고의 영화 축제 칸 국제영화제의 올해 행사가 정점을 찍고 폐막을 향해 달리고 있다.
지난 13일 개막한 제68회 칸 국제영화제의 공식 경쟁 부문에서는 19편의 공식 경쟁작 가운데 13편이 상영됐으며 '주목할 만한 시선'과 비경쟁 부문에서도 이름난 감독들의 신작 최초 공개가 이어졌다.
영화산업 관계자가 한데 모여 영화를 사고파는 필름 마켓은 올해도 성황을 이뤘으며 한국 수입사들의 치열한 경쟁도 이어졌다.
◇ '캐롤' '사울의 아들' '내 어머니' 호평
올해 영화제는 여성과 가족에 주목했다.
공식 개막작으로 프랑스 여성 감독 에마뉘엘 베르코의 '스탠딩 톨',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의 개막작으로 일본 여성 감독 가와세 나오미의 '안'을 선정했고 여성과 가족을 다루는 작품을 대거 초청해 출발부터 그런 경향을 내비쳤다.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두고 겨루는 공식 경쟁 19편 가운데 13편이 공개된 가운데 현지에 모인 각국 평론가들도 여성의 삶과 가족의 관계를 성찰하는 영화들에 호평을 보내고 있다.
가장 좋은 평가를 받는 작품은 공식 경쟁에서는 미국 영화 '캐롤'과 헝가리 영화 '사울의 아들', 이탈리아·프랑스 영화 '내 어머니'다.
스크린 인터내셔널이 집계한 평론가 평점에서 '캐롤'은 4점 만점에 3.5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기록했고 '사울의 아들'이 2.8점, '내 어머니'는 2.7점으로 뒤를 잇고 있다.
호평이 쏟아지고 있는 '캐롤'은 '파 프롬 헤븐'의 토드 헤인스 감독과 배우 케이트 블란쳇·루니 마라가 호흡을 맞춘 레즈비언 영화.
1950년대를 배경으로 남편과 아이가 있는 여자 캐롤과 백화점 직원 테레즈가 주체할 수 없이 빠져드는 감정과 그 뒤에 따르는 그늘을 섬세하게 빚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라슬로 네메스 감독의 '사울의 아들'은 1944년 헝가리를 배경으로 나치 작전에 협조하도록 강요받은 유대인 사울이 아들처럼 여기는 아이의 시신을 발견하고 이 시신을 빼내 제대로 된 장례를 치러주려 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네메스 감독은 신인 감독에게 주어지는 '황금카메라상' 후보에 오른 신예로, 쟁쟁한 선배 감독들을 제치고 그의 영화가 호평받는 상황 자체가 이미 '신인의 반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아들의 방'으로 유명한 난니 모레티 감독의 '내 어머니'는 미국 스타와 영화를 찍는 여성 감독 마르게리타(마르게리타 부이)가 병을 앓는 어머니와 사춘기를 겪는 딸 사이에서 자신의 삶을 부여잡으려 애쓰는 과정을 담았다.
가장 혹평받는 영화는 '시 오브 트리스'다. 구스 반 산트와 매슈 매코너헤이의 만남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일본에 실제 있는 자살 숲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는 참혹할 정도로 혹평 세례를 받으면서 스크린 집계 평점 0.6점에 그쳤다.
물론 모든 영화가 공개되지 않았고 심사는 결국 언론이나 평론가가 아닌 코언 형제가 이끄는 심사위원단이 하는 것이므로 결과는 끝까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파울로 소렌티노의 '유스', 자크 오디아르의 '디판', 허우샤오셴의 '섭은낭', 미셸 프랑코의 '크로닉', 기욤 니클루스의 '밸리 오브 러브', 저스틴 쿠젤의 '맥베스'가 평가를 기다리고 있다.
공식 경쟁 다음으로 주목받는 부문인 '주목할 만한 시선'에서도 여성과 가족을 조명하는 영화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호세 루겔레스 그라시아 감독의 '알리아스 마리아'는 남미 여성 게릴라군이 고통스럽고 비극적인 환경에서 모성을 찬란하게 피우는 모습을 그려냈다.
한국 초청작인 신수원 감독의 '마돈나'는 억압받는 여성과 모성을 그려내며 일본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해안으로의 여행'은 죽은 남편과 산 아내가 함께 여행을 떠나며 부부의 관계를 되짚어보는 이야기다.
한편 칸 영화제 측은 하이힐이 아닌 단화를 신었다는 이유로 여성 관객의 상영관 입장을 거부해 비난을 사는 해프닝이 빚어지기도 했다. 영화제 측은 공식 상영회에서 관객에게 정장 착용을 요구한다.
이에 "영화제 측이 올해 여성에 관심을 보이는 듯하더니 실제로는 여성에게 잘못된 기준을 적용한다"며 역비판의 화살이 쏟아졌다.
◇ 한국영화 3편 상영…황금카메라상 후보 2명 올라
한국영화는 초청작 4편 가운데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의 '무뢰한'(오승욱), 비평가 주간의 '차이나타운'(한준희), 미드나잇 상영 부문의 '오피스'(홍원찬) 등 3편이 칸에 소개됐고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의 '마돈나'는 20일 상영을 앞두고 있다.
이 가운데 홍원찬·한준희 감독은 장편 연출 데뷔작으로 칸을 찾은 만큼 '황금카메라상' 후보에 올라 있다.
이제까지 상영된 세 편 중에서는 '오피스'가 현지 관객으로부터 가장 호감을 샀다. '무뢰한'과 '차이나타운'은 평이 엇갈렸다.
할리우드 영화라면 '매드맥스-분노의 도로'처럼 블록버스터가 비경쟁 부문으로 칸에 초청되는 일은 흔해졌지만, 국내 초청작은 대개 보통의 상업영화보다 작은 예산으로 만들어진 영화들이다.
감독들이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거나 전작의 흥행 실패로 십수년간 신작을 내지 못하는 등 척박한 환경의 한계를 딛고 완성한 작품들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마돈나'는 순제작비 4억원에 완성된 대표적인 저예산 영화이며 '차이나타운'에는 25억7천만원, '무뢰한'에는 34억원이 들어갔다. 작년 기준 한국 상업영화의 평균 순제작비는 43억8천만원이다.
"영화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자"는 목소리가 이어진 것도 올해 칸 영화제의 특징이다.
티에리 프레모 집행위원장은 영화에 집중하는 환경을 만들자는 뜻으로 '셀피(셀카) 금지령'을 내렸고 조엘 코언은 기자회견에서 "극장 영화에는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특별함이 있다"고 설파했다.
또한 고전 영화를 복원해 상영하는 부문인 '칸 클래식'에서 '시민 케인'(오손 웰스), '마르세예즈'(장 르누아르) 등 고전 영화들과 오손 웰스, 알프레드 히치콕, 프랑수아 트뤼포, 잉그리드 버그만, 스티브 매퀸 등 대가(大家)를 조명하는 새로운 영화도 소개됐다.
칸 해변에서 무료로 공개되는 야외 상영장에서도 '란'(구로사와 아키라), '아폴로 13'(론 하워드), '터미네이터 1'(제임스 캐머런), '유주얼 서스펙트'(브라이언 싱어) 등 영화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할 만한 영화가 상영됐다.
◇ 칸 마켓 거래 활발…한국 영화사 물밑 경쟁 치열
칸은 좋은 영화를 상영하고 영화인들을 한데 모으는 축제의 공간일뿐 아니라 영화산업의 상품으로서 영화를 사고팔 수 있는 가장 큰 장이 서는 곳이기도 하다.
올해도 칸에 모여든 전 세계 제작·배급·수입사 관계자들은 자사 영화를 다른 나라에 내보내고 외국 영화를 자국에 가져가려 바쁘게 발품을 팔았다.
한국 영화사들 역시 숨 가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국내 제작사와 배급사, 해외 세일즈사들은 저마다 마켓에 부스를 차리고 완성된 영화 또는 제작 중인 영화를 수출하려 바이어들과 상담과 협상을 벌였다.
최동훈 감독의 '암살'이 북미 등지에, '간신'이 프랑스 등지에, 강효진 감독의 '미쓰 와이프'가 아시아 지역에 선판매되는 등 성과도 있었다.
국내 수입사들도 좋은 영화를 가져오려 흥정에 나섰다.
최근 몇 년간 '아트버스터'(아트+블록버스터의 합성어)의 흥행 성공과 온라인 부가시장의 성장으로 경쟁이 과열된 다양성영화 수입업계 분위기는 칸 마켓으로 그대로 이어졌다.
공식 경쟁작 19편 가운데 국내 수입이 결정됐다고 알려진 작품만 10편이다. 그중에서도 상당수가 개막하기도 전에 이미 수입이 결정된 작품들이다.
경쟁이 치열해지자 불과 5∼6년 사이 영화 수입 가격이 2∼3배 뛰어올라 진정될 필요가 있다는 경계심은 크지만, 제어할 만한 여건이 없다는 점에서 우려를 사고 있다.
한 수입사 대표는 "수십년간 영화 수입 일을 했는데도 처음 보는 한국 수입사가 칸 마켓에서 작품을 사는 모습이 꽤 많이 눈에 띈다"며 "편당 1만달러 정도 하던 예술영화 수입가는 이미 2∼3배 이상 올랐다"고 말했다.
또 다른 수입사 대표도 "이미 개막 전에 선점된 영화가 많아 칸에 와서는 막상 살 만한 영화는 남아 있지 않다"며 "중국 다음으로 한국 바이어가 세계 아트영화를 쓸어담고 있다는 얘기는 이미 업자들은 물론이고 칸 마켓 주최 측에까지 퍼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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