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산류씨 집안으로 보는 가족 이야기
국립민속박물관, 한국국학진흥원과 협업 전시
편집부
news@bujadongne.com | 2015-05-19 10:20:48
풍산류씨 집안으로 보는 가족 이야기
국립민속박물관, 한국국학진흥원과 협업 전시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경북 안동시 풍산면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1542~1607) 종택 사랑채는 당호(堂號)가 충효당(忠孝堂)이다. 그 편액은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명필 미수 허목(許穆·1595~1682)이 썼다. '충효'란 "충과 효 외에 힘쓸 일은 없다"는 류성룡의 유훈을 받들어 증손자 류의하(柳宜河)가 지었다고 한다.
이 편액은 현재 안동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됐다.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천진기)이 가족의 달인 5월을 맞이해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이용두)과 함께 류성룡이 대표하는 풍산류씨 집안의 가족 이야기'로 상설전시실 3관 가족 전시코너를 꾸며 최근 선보이기 시작했다.
이 자리는 충효당을 비롯해 한국국학진흥원이 소장한 풍산류씨 집안 기탁자료 160여 점으로 꾸몄다.
풍산류씨 기틀인 하회마을은 이중환(李重煥·1690~1752)이 택리지(擇里志)에서 살기 좋은 곳으로 꼽았다. 고려말 조선초 류종혜(柳從惠)가 이곳에 입향(入鄕)한 이래 류운룡(柳雲龍·1539~1601) 류성룡 형제를 비롯한 많은 학자와 정치인을 배출했다.
류운룡·성룡 형제가 퇴계 이황(李滉·1501~1570) 문하에서 수학하면서 가학(家學)을 형성하고, 특히 류성룡이 영의정이 되고 임진왜란을 이겨낸 공신에 책봉됨에 따라 풍산류씨는 안동을 대표하는 명문가 중 한 곳이 된다.
이번 가족 코너에는 임진왜란 당시 류성룡의 영의정 임명장인 교지와 그가 죽어 임금에게서 받은 이름인 문충공(文忠公) 교지도 선보인다.
류성룡 8대손인 류이좌는 "화(和)로써 어버이를 섬기면 효(孝)요, 경(敬)으로써 임금을 섬기면 충(忠)이다"는 뜻에서 화경당(和敬堂)이라는 당호를 내걸기도 했으며, 남촌댁에서는 사당 담벽에 충효라는 두 글자를 새기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는 석봉(石峯) 한호(韓濩·1543~1605) 글씨를 모각(본떠 지음)한 화경당(和敬堂) 현판과 한 집안에서 동시에 문과 합격자 2명을 배출한 경사를 한글가사로 표현한 쌍벽가도 소개한다.
또한 류성룡이 하회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옥연정사에서 임진왜란 회고록인 징비록을 작성할 때 사용했다는 대나무 경상(經床)도 나왔다. 이에 적힌 이만부(李萬敷·1664~1731)의 글에 따르면 이 경상은 류성룡이 아들 류진(柳袗·1582∼1635)에게 전한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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