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국 러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은?

첼랴빈스크 '유류잔'…A&F, 산업화 실패 현장 '르포'

편집부

news@bujadongne.com | 2015-05-18 17:05:19


세계 최대국 러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은?

첼랴빈스크 '유류잔'…A&F, 산업화 실패 현장 '르포'



(서울=연합뉴스) 지일우 기자 = 러시아. 2014년 기준으로 면적이 한반도의 78배이자 미국의 1.8배인 1천709만 8천여㎢로 세계 1위, 인구 약 1억 4천247만여 명으로 9위, 국내총생산(GDP) 2조 573억 달러로 9위 등 각종 통계상으로 세계 10위권에 들어가는 군사 강국이다.

인구에 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데 경제 호전과 지난해 4월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병합(220만여 명) 등으로 1억 4천600만 명을 웃돈다는 자료도 있다. 어쨌거나 세계 최대 면적을 가진 나라의 인구가 면적 기준으로 세계 3위인 미국(약 3억 1천889만여 명)의 절반이 안 되고 62위인 일본(1억 2천710만여 명)보다 약 2천만 명 정도 더 많을뿐이다.

옛 소련이 해체하면서 1991년 12월 25일 설립했으며 대통령제에 상하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다. 지방 정부 수장과 부(副) 수장으로 구성되는 상원의 정원이 168명이니까 84개 지방으로 구성된 셈이다. 이들 지방 중에는 테러 등으로 우리에게도 낯익은 체첸과 다게스탄 등 20여 개의 공화국도 포함된다. 이들 공화국은 옛 소련을 구성했다가 독립한 15개 공화국과 종종 헷갈리기도 한다. 이 때문에 공식 국명도 러시아 연방이다. 주(州)들 역시 이름에 크라이(하바롭스키·프리모르스키 크라이 등)나 오블라스티(모스콥스카야 오블라스티) 등 각기 다른 명사가 붙는 곳이 많다.







석유와 천연가스, 니켈 등 천연자원이 풍부하다. 크렘린궁에 붙어 있는 '크렘린무기고 박물관'에는 각종 크기의 다이아몬드로만 가득 채워 놓은 전시실 '알마즈느이 잘(금강석홀)'이 별도로 마련돼 있으며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작품당 1분씩만 감상해도 8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다는 에르미타주 미술관을 보유한 나라다. 여기에 GDP가 세계 9위에 이르지만 러시아 하면 잘 못사는 나라를 연상케된다.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소련 시절 계획경제가 실패했고 이후 소련을 승계한 러시아 역시 막대한 부존자원과 그 관련 산업을 체계적으로 육성하지 못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일 듯싶다.

러시아 온라인 뉴스웹사이트인 RBK는 최근 우랄산맥 동쪽에 있는 첼랴빈스크주(州.오블라스티)의 유류잔시(市)를 러시아에서도 가장 못사는 도시로 소개했다. 인구 1만2천 명인 이 도시의 평균 임금은 월 1만 루블(약 22만원)로, 최저생계비의 1.8배에 불과하다고 한다. 시사주간 '아르구멘트이 이 팍트이'(논거들과 사실들. 이하 A&F)가 지난 12일 인터넷판에서 소개한 이 도시는 소련 시절 계획경제의 실패와 러시아의 부진한 산업화현장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높은 교통사고율 탓에 '죽음의 길'로 불리는 M5도로는 현재 최악의 상태다. 첼랴빈스크주에서도 이 자그마한 도시 유류잔을 찾으려면 200km 조금 넘는 이 도로 구간을 지나야 하는데 거의 매 2km마다 도로공사나, 낙뢰로 부서져 길을 가로막는 나무들로 인해 도로가 좁아졌다. 자극적인 냄새를 풍기는 대형 화물차들이 맞은 편 차선으로 지나갔다. 이 산골 지역에는 비가 내렸고 하늘은 잿빛이었으며 기분은 우울했다."

소련 시절 모든 국민이 갖고자 열망했다는 같은 이름의 냉장고, 즉 '유류잔' 냉장고를 생산했던 유류잔을 찾은 A&F의 첫 마디다.

"유류잔 초입에서부터 놀라운 장면이 펼쳐졌다. 도로 양옆으로 좌판을 깐 노점상들이 늘어섰다. 할머니들이 피로그(러시아 만두) 조각 몇 개 갔다 놓고 저녁이면 집으로 가져갔다가 아침이면 다시 가져나오는 그런 소박한 노점상들이 아니다. 이곳의 노점상들은 마치 터키 어느 곳의 상점들처럼 '지역 특산품들'을 내다 놓고 파는 곳들이다."

르포는 이어진다. "지역 주민인 미샤는 관광객처럼 보이는 우리를 붙들고는 상품 자랑을 늘어놨다. '이 사모바르(물 끓이는 도구) 사지 않을래요? 이런 제품은 어디에도 없어요. 50년 동안 이것만 만들었습니다. 새로운 상품처럼 보이지만 아주 멋지게 보이게 했을 뿐, 요즘 제품이 아닙니다. (옛것을) 완전 개조한 거죠. 모두 해서 6천 루블(약 13만2천 원)입니다. 모스크바에는 이런 거 없어요.'"

이곳 노점상들이 파는 상품들은 사모바르 외에 공기총과 우랄산 보석으로 만든 기념품, 냉장고에 붙이는 자석, 우단으로 만든 아이용 장난감으로, 모든 노점상이 대동소이하다고 했다. 거의 모든 유류잔 시민이 도시 초입 도로로 나와 이런 노점상을 하고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거리들은 텅 비어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한 정거장에서 한 명의 여성이 두 명의 아이와 서 있었고 거리에서는 이 상점 저 상점을 기웃대는 노인들만보였을뿐"이라는 것이다.

유류잔이 옛날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실제로 1755년 당시 엘리자베타 페트로브나 황제가 인근 카타프강(江) 유역의 지주들에게 '수력기계' 공장을 만들도록 명령했고 이 지주들이 유류잔에 주철공장을 세웠다고 한다. 이후 이 공장은 에밀리야 푸가초프의 반란(1773~1775년) 때 완전히 파괴됐다가 후에 복원돼 나폴레옹 전쟁 때인 1812년에는 1천800개의 포탄과 650개의 폭탄, 2천 개의 수류탄을 만들었고 이듬해에는 4천888개의 포탄과 1천200개의 폭탄을 제조하는 등 성가를 날리기도 했다.

이어 20세기 초 이 공장에서 혁명이 일어나 1908년 공장가동이 중단되기도 했지만 대조국전쟁(2차 세계대전) 때는 총탄을 제조해 정부에 공급했다. 전후에는 트랙터와 콤바인 등을 위한 장비들을 만들다가 1960년대 초부터는 그 유명한 '유류잔' 냉장고를 대량 생산하기 시작했다. 유류잔 냉장고는 당시 장식용 가구, 컬러 TV와 함께 모든 소련 사람들의 꿈이었다고 한다.

이런 유류잔 공장의 명성도 오래가지 못했다. 1990년대 들어 소련이 해체된 뒤 시행된 러시아의 개혁정책이 직격탄이 됐다. 공장은 경쟁력을 잃었고 임금 체불이 시작됐다. 현 노점상들의 부모들은 임금 대신 받은 냉장고를 팔기 위해 지금의 노점상 자리에 나와야 했다고 현지의 어르신들은 A&F에 말했다.

현재 유류잔에는 극장이나 공연장, 그리고 전시장은 물론 어떤 종류의 문화공간도 없다고 한다. A&F는 "유류잔이 러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도시 중 하나라는 점은 모든 유류잔 사람들이 알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완전히 납득할만한 설명도 있다"면서 "도시에 사실상 공식 일자리가 없고 세금을 납부할 방법이 없으며 사실상 태환 화폐를 받을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것이다"고 썼다.

그러면서 "유류잔에는 일자리가 재난에 가까울 정도로 부족하기 때문에 1만2천 유류잔 시민들은 시 외곽, 즉 도로나 인근 지역으로 나가 일하고 있다"며 "이 때문에 만일 이들이 세금을 낸다하더라도 인근 지역 금고로 다 들어가게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M5도로변 간이식당에서 일하는 한 점원은 A&F에 "당신들이 뭘 바라든 우리 운명은 전국에 있는 수천개의 공장도시(산업도시)와 똑 같다. 기업체가 붕괴하면서 주변의 거의 모든 것 역시 붕괴했다. 이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곧바로 가난한 실업자가 됐다"면서 "누구를 비난하겠나? 누가 소련의 권력을 교체했나?"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그래도 나는 여기서 일자리는 찾았다. 밥을 팔아 끼니를 연명하고 있다. 곧 여름이 오면 토마토와 사과들이 자라나 샐러드를 만들어 도로변에서 팔 수 있을 것이다. 달리 어떻게 살겠나?"면서 "5년을 전문대학에서 공부해 이제 계산은 할 수 있게 됐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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