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엔 내전만 있다고?…'개혁 새바람'도 분다
포린폴리시, 신생정당 '사모포미치'·키예프 시장 조명
편집부
news@bujadongne.com | 2015-05-05 15:26:31
우크라이나엔 내전만 있다고?…'개혁 새바람'도 분다
포린폴리시, 신생정당 '사모포미치'·키예프 시장 조명
(서울=연합뉴스) 지일우 기자 = 우크라이나. 지난해 4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남동부 크림반도(크림 자치공화국) 병합을 계기로 세계의 '화약고'로 떠오르면서 다시금 주목받는 곳이다.
현재에도 동부지역에서는 크림반도와 마찬가지로 러시아로의 편입을 희망하는 친(親)러시아 성향의 반군이 러시아의 지원을 등에 업고 정부군과 교전을 벌이고 있기도 하다. 지난 2월 러시아와 유럽연합(EU)의 중재로 정부군과 반군 간에 휴전협정(민스크협정)이 채택됐음에도 교전은 이어지고 있으며 최근 들어서는 오히려 격화하는 양상이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과 계속되는 동부지역에서의 교전 탓에 미국을 비롯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러시아는 동유럽에서 일촉즉발의 대치상태를 이어가고 있다.
우크라이나 하면 정부군과 반군간 교전 외에도 한두 가지가 더 떠오른다. 우리 언론에도 간헐적으로 소개됐기 때문인데, 우선 미인들이 많다는 것과 격투장을 방불케 하는 국회 모습이다. 특히 얼마 전에는 의원 2명이 국회에서 '격투기'를 연상케 할 정도의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이 전파를 타 국제적으로 다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정부군과 반군간 교전, 이를 둘러싼 서방과 러시아 간 힘겨루기에 가려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이런 우크라이나가 달라지고 있다. 미국의 외교전문지인 포린폴리시는 지난달 29일자에서 작지만 의미는 결코 작아 보이지 않는 2개 사안을 통해 바뀌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모습을 조명했다.
◇ 전화메시지 때문에 우크라이나 국회의원이 사임!
안드레이 미로쉬니크 의원은 지난달 21일 이후 고약한 한 주를 보내야 했다. 회기 중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하는 모습이 사진기자에게 잡혔기 때문이다. 숱한 몸싸움과 주먹다짐으로 얼룩져온 우크라이나 의회에서 이 정도는 큰 문제도 안 될 수 있었지만 문제는 놀랄만한 그 내용이었다.
하나는 미로쉬니크가 '보스'라고 부른 인물에게 보낸 것으로, 2만7천 달러(약 2천900만원)에 달하는 몰디브 가족휴가 예약을 위한 것이며, 다른 하나는 그가 올랴라고 부른 여성과 '놀아난' 것이었다. 이 메시지는 "나라에 대해 생각하는 대신 나는 옥수수 한 개(an ear of corn)로 모든 세계 문제를 해결하는 내 사랑에 대해 생각하고 있소"라는 내용으로, 정확한 의미는 절대 알려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은밀한 내용임에는 분명했다. 이를 두고 공격적인 우크라이나 언론은 미로쉬니크의 아내 이름이 올랴가 아닌 인나라고대서특필했다.
미로쉬니크는 같은 당인 '사모포미치(자조·自助)'당 소속 동료의원들과 열띤 토론을 벌인 끝에 바로 그 다음 날인 22일, 자신을 찍은 유권자들이 자신을 "자격없다"고 느꼈다면 이에 대해 사죄하며 "자유인"으로 돌아가길 원한다면서 사임했다.
사실상 이번 물의는 우크라이나에서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참된 신호일 수 있다. '약탈형' 정치가였던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 하의 우크라이나 집권당은 거수기에 불과했으며 의회는 '꼭두각시들'(친척들)과 올리가르흐들(과두지배세력), 그리고 '협잡꾼들'로만 구성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 부도덕한 인사 중 누구도 과거에는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이 편안한 한직에서 사임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특히 외설적인 문자메시지를 보낸 게 걸린 것 때문에 사임한다는 건 꿈조차 꾸지 않았다. 그러나 미로쉬니크의 사임은 이 사안이 공개돼 숱한 사회관계망 서비스(SNS)에 비난 글이 쏟아지고 수십 개의 웹사이트에서 희화화되면서 단 하루 만에 이뤄졌다.
이런 차이는 미로쉬니크가 속한 사모포미치당의 특성에 일부 기인한다. 사모포미치는 우크라이나 정치계에서는 정말 새로운 현상으로, 진보성향의 서부 도시인 르비프시(市)에서 풀뿌리 시민운동 단체로 시작했다. 사모포미치는 설립자이자 르비프 현 시장으로서, 일련의 성공적인 정책으로 탄탄한 인기를 구축한 안드레이 사도비의 후원 아래 급속히 세를 불렸다.
사도비가 2006년 시장으로 첫 당선된 후 사모포미치는 그의 시 정부와 긴밀히 협력했으며 지원을 제공하면서 그로 하여금 계속 단체를 이끌도록 했다. 사모포미치는 이후 2012년 정당으로 공식 등록했으며 2014년 총선에서 당당히 3위를 차지하면서 의회에 입성했다. 사모포미치는 젊음과 친서방 노선, 그리고 참신성을 내세우고 있다. 의원 33명 모두가 초선이다.
같은 당 소속 의원들이 미로쉬니크의 사임을 당혹스럽지만 '활력'의 신호로 여기는 것도 이런 이유일 수 있다. 풀뿌리 시민운동단체 출신으로, 작은 도시(르비프) 행정부와 긴밀히 연계돼 있기 때문에 지지자들이 언제 어디서나 지켜보고 있다는 데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사모포미치는 이 사안이 처음 공개됐을 때도 곧바로 대응해야 한다는 점을 알았다.
사모포미치의 활동가이자 사도비 시장의 자문역인 오스타프 프로칙은 "이런 상황에서는 달리 살아날 방법이 없다"면서 "다른 정당 같았으면 이를 무시했을 것이다. 누가 이런 문자메시지에 신경 쓰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이런 사안을 허용할 수 없다. 우리는 매우 매우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모포미치 당이 페이스북에 올린 공식 사임 논평에 대한 반응은 압도적일 정도로 긍정적이다. 어떤 이는 "나는 당신네 당을 보고 투표했다. 나는 단 하루도 이를 후회해본 적이 없다! 포기하지 마라, 친구들아!"라고 썼고 다른 이는 "이 사안은 선례가 될 것이다. 불쾌한 상황이지만 그의 반응은 존경할만하다. 이는 민주국가에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지 보여준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 키예프 시장이 부패를 말하며 외자 유치에 나섰다!
비탈리 클리치코 키예프 시장은 복싱선수 시절 '철권(鐵拳) 박사'로 불렸다. 체격과 두뇌를 겸비한 그에 대한 칭송이었다. (그는 키예프 국립농업대학교에서 명예 농업박사학위를 취득했다). 6피트6인치(198.12㎝)의 키에 소련 시절 탱크를 연상케 하는 체격의 전 WBO 헤비급 챔피언인 클리치코 시장이 포린폴리시와 인터뷰를 위해 워싱턴DC의 호화로운 조지타운 호텔에 들어설 때는 현관 경비원으로 보이기도 했다.
복서였던 클리치코는 현재 또 다른 싸움을 하고 있다. 소련 이후 가장 격동기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시기에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동부에서는 유혈 내전이 진행 중이고 우크라이나의 가스 수급도 불안정한 상태며 경제는 외국의 원조, 특히 성장 및 반부패 개혁과 연계된 170억 달러(약 18조3천700억 원)에 이르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
그의 워싱턴 방문은 시장 취임 1년을 즈음해 이뤄진 것으로, 클리치코는 11개월 전 우크라이나의 수도에 새로운 삶을 불어넣겠다는 일련의 공약을 내걸어 당선됐다. 미국 의원들과 조 바이든 부통령, 그리고 잠재적 투자자들을 만난 그는 이제 공약을 이행하고 키예프에 꼭 필요한 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클리치코는 "키예프는 투자하기에 안전하다. 전쟁은 키예프에서 700km 떨어진 곳에서 이뤄지고 있으며 키예프는 큰 도시"라고 강조하면서 "내 도시에 이뤄지는 모든 투자를 위해 내가 개인 경호를 할 것"이라고 반 농담조로 말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암울한 전망에도 불구하고 클리치코는 중대한 개혁 조치들을 취하고 있다. 투명성을 높이려고 우크라이나에서는 처음으로 모든 정부 문서를 공개하는 것은 물론 온라인에도 올리고 있다. 세법을 단순화하고 23%이던 법인세를 18%로 낮췄다. 권력남용과 부패로 신뢰도가 바닥인 경찰 개혁도 추진하고 있다. 봉급인상과 경쟁시험을 통해 경찰의 권위를 회복하려는 것이다. 클리치코는 "우리는 젊고 교육받은, 완전히 다른 모습의 경찰을 바라고 있다"고 했다.
클리치코는 우크라이나 에너지 시장에 대한 러시아의 장악력을 낮추길 희망하고 있다. 그는 "지난겨울 우리는 러시아산 가스를 30% 덜 썼다"면서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아예 없애는 게 우리 목표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온도조절을 위해 러시아식 방식을 사용했다"면서 "더우면 창문을 열고 추우면 닫는 거다"고 농담했다.
클리치코는 2006년과 2008년 키예프 시장직에 도전했다가 낙선했고 2010년엔 친서방 성향의 '개혁을 위한 우크라이나 민주동맹'(UDAR)당 총재가 됐다. 2012년 총선에서는 UDAR을 3위 정당으로 올려놨다. 지난해에는 야누코비치 당시 대통령의 퇴진을 이끌어낸 반(反) 야누코비치 시위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 야누코비치와의 협상에 나서기도 하는 등 이른바 '마이단 혁명'의 중심적 인물이기도 했다.
◇ 우크라이나 소개
유럽의 동남부지역, 흑해 연안에 있으며 동쪽으로는 러시아, 북쪽으로 러시아와 벨라루스, 서쪽으로 폴란드, 체코, 헝가리, 루마니아, 몰도바, 남쪽으로 흑해와 아조프 해에 면해 있다.
1917년 우크라이나 소비에트공화국으로 선포됐고 1922년 12월 옛 소비에트연방(소련)의 창립 회원국이었다가 1991년 말 소련의 해체로 독립국이 됐다.
국토면적은 60만 3천700㎢로 한반도의 약 2.7배다. 인구는 4천5백만 명을 넘지 않으며 우크라이나인(73%), 러시아인(22%), 유대인(1%), 기타 소수민족(4%)으로 구성됐다.
현재 조지아(러시아명 그루지야)와 함께 러시아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체제 편입을 희망하고 있다.
우리나라와는 소련 해체 이듬해인 1992년 2월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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