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메니아-터키, 대학살 100주기 외교전 치열

오바마 대통령 '인종학살' 언급 여부 주목

편집부

news@bujadongne.com | 2015-04-14 21:42:40

아르메니아-터키, 대학살 100주기 외교전 치열

오바마 대통령 '인종학살' 언급 여부 주목



(이스탄불=연합뉴스) 김준억 특파원 = 아르메니아와 터키가 최근 수년간 벌였던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을 둘러싼 외교전이 올해는 전례 없이 치열한 양상이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만제국의 아르메니아인이 대규모로 학살된 사태가 오는 24일이면 100주기를 맞기 때문이다.

아르메니아는 1915년 4월24일 오스만제국의 내무장관 탈라트 파샤가 아르메니아인 강제 이송을 지시한 날부터 1917년까지 모두 150만명이 숨졌다며 국제사회에 이 사태를 인종학살(Genocide)로 인정하도록 전방위 외교전을 펼치고 있다.

아르메니아의 세르즈 사르키샨 대통령은 오는 24일 수도 예레반에서 성대하게 치를 100주기 행사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을 포함한 각국 지도자 100여명을 초청했다.

사르키샨 대통령은 또 지난 12일에는 아르메니아 정교회의 네르세스 베드로스 19세 타르무니 총대주교와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열린 아르메니아 대학살 100주기 기념 미사에 참석했다.

이 미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20세기 최초의 인종학살로 여겨지는 첫 번째 비극은 아르메니아인들에게 닥쳤다"고 말했다.

교황의 '인종학살' 발언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지난 2000년 당시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가 아르메니아의 케라킨 총대주교와 함께 작성한 성명서를 인용한 것이다.

미국의 TV 스타인 킴 카다시안도 '인종학살 100주기'를 세계에 알리는 데 한몫하고 있다. 부친이 아르메이아계인 카다시안은 지난 8일 자신이 출연하는 TV 리얼리티쇼 촬영차 예레반을 방문해 공식 행사 등을 통해 인종학살을 잊지 말자고 촉구했다.

아르메니아 방문을 마친 카다시안 부부는 13일 이스라엘로 이동해 예루살렘의 아르메니아 정교회 대성당에서 21개월 된 딸의 세례식을 가져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아르메니아는 교황의 발언과 카다시안의 방문으로 인종학살 인정 여론이 높아지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약속대로 인종학살을 인정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8년 대선 후보시절 아르메니아인들이 인종학살로 희생됐다며 당선되면 이를 역사적 사실로 인정하겠다고 공약했지만 지금까지 지키지 않았다.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는 지난해 4월 오바마 대통령에게 터키가 인종학살임을 인정하고 아르메니아와 관계를 개선하도록 힘쓸 것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했음에도 오바마 대통령은 99주기 성명에서 '참혹한 사건'이라고만 말했다.

미국의 아르메니아계 단체들이 오바마 대통령의 공식 인정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정치적, 심리적 효과가 클 뿐만아니라 현재 오스만제국의 후신인 터키에 있는 재산과 관련한 소송을 할 수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현재 터키에 의한 아르메니아 인종학살을 공식 인정한 국가는 프랑스와 러시아, 그리스 등 22개국이다.

이들 국가의 공식 인정에는 자국 내 아르메니아 유권자나 국제 관계 등 정치적 이유도 반영됐듯이 미국 대통령의 소극적 태도 역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동맹국인 터키와 관계가 악화하면 중동 정책에 부정적 영향이 크다는 점도 고려됐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인종학살 대신 '잔혹한 범죄'(atrocity crimes)라고만 표현했다.

반 총장의 대변인인 스테판 두자릭은 13일 성명에서 "반 총장은 아르메니아와 터키가 사건 발생 100주기를 함께 기리고 공동조사로 사실을 밝힘으로써 그런 잔혹한 범죄의 재발을 막겠다는 집단적 의지가 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터키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총리 시절인 99주기를 하루 앞두고 발표한 성명에서 사상 처음으로 희생자와 유가족에 애도를 표한 바 있다.

다만 당시 그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이주 등 비인도주의적 결과로 종교와 인종에 무관하게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며 아르메이아인 외에도 터키인과 쿠르드, 아랍 등 오스만제국의 모든 민족이 희생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터키는 전시 상황의 불가피한 사건으로 희생자도 30만명 정도라며 국제법상 책임의 소지가 있는 인종학살을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아흐메트 다부토울루 총리 역시 지난 12일 교황의 발언 직후 바티칸 주재 메흐메트 파차즈 대사를 본국으로 불러들이며 강하게 반발해 전 정부와 같은 입장임을 분명히 밝혔다.

터키의 이슬람교 최고 기구인 종교청(디야넷)의 메흐메트 교르메즈 청장은 13일 "정치적 로비와 홍보회사들이 종교 기관의 의식과 신자들에까지 활동을 확대한 것은 불쾌하다"며 바티칸이 아르메니아의 로비를 받았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터키 정부는 아르메니아가 100주기 행사를 개최하는 날인 24일에 '갈리폴리 전투 100주년 기념식'을 개최한다며 사르키샨 아르메니아 대통령을 포함해 100여국 정상들에 초청장을 보내 맞불을 놨다.

갈리폴리 전투는 1차 대전 당시인 1915년 4월 24일부터 25일까지 터키 서부 차낙칼레의 갈리폴리 항에서 치러졌으며 오스만제국군은 영국과 호주·뉴질랜드연합군(ANZAC) 등 연합군의 상륙작전을 저지했다.

오스만제국은 1915년 4월부터 아르메니아인 18~50세 남자들을 모두 강제 징집했으며 이들 상당수는 군사훈련과 공사현장에 동원돼 집단 사살되거나 질병, 기아 등으로 숨졌다. 부녀자와 노약자 등도 사막으로 추방돼 1916년까지 대거 목숨을 잃었다.

역사학자들은 희생자 규모를 각기 다르게 추정하고 있으며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은 영국의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가 1916년 5월 영국 외무성 관리로 조사한 '60만명이 죽거나 추방 과정에서 학살됐다'는 보고서를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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