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돌아오지 않는 아내를 기다리는 남편
열악한 노동환경·저임금·성차별…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과제들
편집부
news@bujadongne.com | 2015-03-12 13:01:20
돌아오지 않는 아내를 기다리는 남편
열악한 노동환경·저임금·성차별…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과제들
(다카=연합뉴스) 이슬기 기자 =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시내 도로는 차선이 없는 곳이 많았다. 승용차와 버스, 삼륜 택시, 인력거 등이 뒤엉킨 도로에서 풍기는 흙먼지와 매연이 콧속을 찔렀다. 어른부터 꼬마까지 갑자기 도로로 튀어나와 가로질러 갔지만 양보해주는 운전자는 없었다. 사람을 몇 번이나 칠뻔한 아슬아슬한 곡예 운전이 계속됐다.
6일(현지시간) 기자는 2년 전인 2013년 4월 24일 붕괴 사고로 수천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의류공장 '라나플라자' 터를 찾았다.
라나플라자는 다카 시내에서 버스로 1시간가량 달려야 도착하는 '사바'(SAVAR) 지역에 있었다.
건물이 무너진 자리는 쓰레기 더미와 건물 잔해가 수북이 쌓인 황량한 공터로 변했다. 잔해에서 침을 삼키면 따가울 정도로 매캐한 흙먼지가 끊임 없이 올라왔다.
주변에는 삐죽한 철조망이 둘러쳐 있어 아무도 들어갈 수 없었다.
철조망 바로 앞에는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한 남성이 간이 책상을 펼쳐두고 가위와 머릿기름만 갖춘 채 길거리 이발소를 차려놓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손님이 오건 말건 호객행위도 하지 않았다. 초점을 잃은 눈빛으로 건물 잔해만 하염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이 남성은 의류공장 붕괴사고로 아내를 잃은 수쿠머 다스씨다. 그는 아내의 시신도 찾지 못했다.
다스씨는 사고 이후 비가 오든 바람이 불든 아침부터 해질 때까지 철조망 옆을 떠나지 않았다고 했다. 철조망에는 그와 아내, 두 아이가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시절 환하게 웃는 사진이 붙어 있었다.
그는 "집이 라나플라자 근처라 밤에는 집에 가서 자지만 아침에 해만 뜨면 아내를 잃어버린 이곳으로 매일 나온다. 가끔 이발소에 손님이 오기도 해서 하루에 250다카(한화 약 3천600원)씩 벌 때도 있다"고 말했다.
이곳에는 의류공장 붕괴로 가족을 잃고도 시신을 찾지 못해 정부로부터 보상금조차 받지 못한 유가족들이 많다. 사고 후 2년이 흘렀지만 하루아침에 아내와 딸을 잃은 상처는 아물지 못하고 있다.
사고 당시 제기됐던 비인간적인 노동착취와 저임금 문제, 안전불감증 등도 여전히 해결돼야 할 과제로 남았다.
국제노동기구(ILO) 방글라데시 지부 코디네이터 알렉시우스 치참씨는 "라나플라자 붕괴사고 이후 제도 개선이 이뤄져 지나친 초과근무가 금지됐지만 최저임금 자체가 너무 낮아 노동자들이 야근을 안 할 수 없다"며 "대부분 관리자가 남성이어서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성희롱도 빈번히 일어난다"고 지적했다.
현지 NGO 단체들도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특히 현지 NGO 단체 중 하나인 '보이스'(VOICE)는 아름다운가게와 함께 라나플라자 터 근처에 사회적 기업인 '뷰티풀웍스' 봉제공장을 세우고 사고 피해자들을 돕고 있다.
보이스 상임이사인 아흐메드 서펀 마흐무드씨는 "같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사고 피해자들이 고통받고 흐느껴 우는 모습을 접하면서 도덕적인 책임감을 느낀다"며 "정신적으로 온전치 못하고 몸도 아픈 사람들을 다시 출발점에 모이게 하는 것 자체가 도전"이라고 말했다.
마흐무드씨는 "하지만 불안정한 정치 상황 등 방글라데시의 모든 한계에도 불구하고 미래는 항상 밝은 것이라고 믿는다"며 "사고 피해자들에 대한 심리치료를 계속하고 노동착취 없이 공장을 돌려 국제시장에 참여하려고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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