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사태 1년> 폐허로 변한 도네츠크 외곽 교전지역
공항·학교·아파트 모조리 부서져…"하루빨리 전쟁 끝나기만"
편집부
news@bujadongne.com | 2015-03-07 08:15:11
△ 교전으로 파괴된 도네츠크 국제공항
(도네츠크<우크라이나 동부>=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반군 간 교전으로 완전히 파괴된 도네츠크 국제공항.
폐허로 변한 도네츠크 외곽 교전지역
공항·학교·아파트 모조리 부서져…"하루빨리 전쟁 끝나기만"
(도네츠크=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 우크라이나 동부 도시 도네츠크 북쪽 프로코피예프 국제공항.
소련 시절인 1930년대에 지어졌다 2012년 우크라이나가 폴란드와 공동 개최한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 맞춰 개보수한 현대식 공항이었다. 수도 키예프 국제공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로, 우크라이나 동부 여러 지역을 잇는 항공 교통의 허브이기도 했다.
하지만 공항의 '옛 영화'를 보여주는 흔적은 지금 어디에도 없다. 기자 일행이 6일(현지시간) 찾은 도네츠크 공항은 완전한 폐허로 변해 있었다.
대형 창유리를 이용해 현대식으로 지어졌던 공항 터미널의 옛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흉물스럽게 부서진 콘크리트벽과 엿가락처럼 휜 철근이 힘겹게 건물 골격에 걸려 있다. 산산이 부서진 유리 조각과 탄피 등이 바닥에 뒹굴고 있을 뿐이다.
쓰레기 더미 속엔 오랫동안 수습되지 않아 말라버린 군인들의 시신 여러 구도 그대로 방치돼 보는 이를 섬뜩하게 한다.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분리주의 반군이 전략 요충지인 공항을 서로 장악하기 위해 지난 몇 개월 동안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끔찍한 흔적이다. 한동안 정부군이 장악했던 공항은 지금은 반군의 손에 넘어갔다.
부서진 터미널의 어두운 실내 곳곳에 진을 치고 있던 중무장한 군인들은 낯선 방문객들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노려봤다.
기자 일행을 안내한 반군 지휘관은 공항 건너편 마을과 몇 km에 걸쳐 펼쳐진 들판 뒤쪽에 정부군 진지가 있으며, 아직도 이곳에서 공항 쪽으로 포탄과 총탄이 날아든다고 설명했다. 그는 반군이 공항 내에 방치된 우크라이나군 시신을 수습하려는 작업도 정부군이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기자 일행이 부서진 터미널 내부를 둘러보는 동안에도 정부군 진지 쪽에서 자동소총과 기관포 소리가 귀를 찢는 듯 들려왔다. 방탄복까지 입었지만 불안함은 가시지 않았다.
공항에서 멀지 않은 쿠예비셰프스키 지역의 옥챠브리스키 마을에도 교전 흔적이 뚜렷했다. 아파트 안으로 포탄이 날아들어 가정집이 쑥대밭이 됐다. 가구와 살림살이들이 반쯤 부서진 채 남아있고 침대 위엔 다정스런 가족의 한 때를 담은 사진첩이 나뒹군다. 전기와 상수도, 가스 공급이 모두 끊기면서 생활이 불가능해 그나마 덜 부서진 집 주인들도 집을 등지고 모두 마을을 떠났다.
얼마 전까지 이 단지에서 살았다는 아파트 주민 막심 코노넨코는 휴전으로 위험이 줄어든 틈을 타 집을 살피러 왔다며 낙심한 표정으로 기자 일행을 맞았다.
그는 "지난해 9월부터 시작된 포격이 지난달까지도 계속돼 아파트를 떠나 있었다"며 "집이 심하게 부서진 데다 전기와 수도, 가스 등이 모두 끊겨 대부분의 주민이 여전히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크게 악화하기 직전까지 도네츠크에서 택시 기사를 했다는 그는 "지금은 내전으로 지역 경제가 완전히 무너져 일자리도 잃었다"며 "어떻게 돈을 구해 부서진 집을 수리할지 걱정"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교전 피해가 상대적으로 덜해 빠른 속도로 안정을 되찾아 가는 도네츠크 시내와는 달리 격전지인 도네츠크 공항에 가까운 지역과 인근 소도시들은 파괴가 심각해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
지난달 체결된 휴전 협정으로 대규모 교전이 멈춘 뒤 분리주의 반군 세력이 세운 '도네츠크인민공화국' 정부가 인프라 복구에 착수했지만 파괴된 시설을 모두 복구하는 데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휴전 협정에도 여전히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정부군과 반군 간 세력 다툼의 와중에 어느 권력에 의지해야 할지 판단조차 서지 않는 민초들의 삶은 피곤하기만 하다.
이런 상황에서 동부 지역을 정치·군사적으로 장악한 반군 세력은 경제적으로 주민들의 생활을 안정시킬 뾰족한 대안이 없어 보인다. 상당수 공장과 산업 시설이 가동을 멈춘 상태에서 물자는 부족하고 물건값은 치솟는다. 실업자도 크게 늘었다.
기자 일행을 안내했던 택시 운전사 예브게니는 "집과 일자리를 모두 잃은 동부 지역 주민들이 우크라이나 정부의 이주 정책에 이끌려 동부 지역 밖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 정착을 시도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성공하지 못하고 다시 돌아온다"며 "다른 지역에선 동부 지역 주민들을 테러리스트나 반역자들로 대하며 꺼려 정착이 힘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친서방 중앙 정부와 이들에 반대하는 분리주의 반군 간 싸움의 볼모가 된 주민들은 어디에서도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없는 떠돌이 신세가 됐다.
예브게니는 "1년 가까이 계속된 교전에 지친 상당수 주민들은 중앙 정부나 반군 어느 한 쪽을 지지하기보다 하루빨리 전쟁이 끝나고 안정이 찾아오기를 바랄 뿐"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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