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번에도 '말의 성찬'?…시험대 오른 대미외교

작년 오바마 '위안부' 발언후 아베 과거사 왜곡에 '무기력 대응'

편집부

news@bujadongne.com | 2015-03-04 01:52:59

미국, 이번에도 '말의 성찬'?…시험대 오른 대미외교

작년 오바마 '위안부' 발언후 아베 과거사 왜곡에 '무기력 대응'



(워싱턴=연합뉴스) 노효동 특파원 = 미국 국무부가 2일(현지시간) 일본에 군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재촉구하는 입장을 밝혔지만, 이번에도 '말의 성찬'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과거사를 덮고 가자'는 취지의 웬디 셔먼 국무부 정무차관 발언 파문을 일단 모면하려는 차원에 그치고 일본 정부를 상대로 실제로 외교적 영향력을 행사할지는 '물음표'라는 얘기다.

작년 과거사 외교를 둘러싸고 전개된 상황이 되풀이되는 '데자뷔' 현상이 빚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3년 12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 신사참배 이후 미국 워싱턴의 기류는 대일(對日) 비판 쪽으로 급속히 기울었다. 작년 1월 마이크 혼다(민주·캘리포니아) 하원의원 주도로 연방 세출법안에 '국무부는 일본에 하원의 위안부 결의안(H.R 121) 준수 이행을 독려하라'는 내용이 들어간 것도 이런 환경에서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백악관과 국무부는 과거사 문제에 본질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당장 시급한 '한·미·일 안보협력'이라는 전략적 관점을 내세우며 한·일 관계 개선에 '인위적인'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했다.

양국 정상을 어떤 식으로든 대화 테이블에 앉혀 화해하도록 만들겠다는 구상이었다. 작년 2월 초 에반 메데이로스 백악관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양국이 곧 고위급 접촉을 하는 것을 환영한다"고 미리 '분위기'를 잡기도 했다.

나아가 오바마 대통령은 같은 해 3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박근혜 대통령, 아베 총리와 함께 한·미·일 3국 정상회의를 주재했고, 이어 4월 일본과 한국을 순차 방문하며 한일 관계 개선을 독려했다.

국무부가 2일 논평을 통해 "2차 세계대전 당시 성(性)을 목적으로 한 일본군의 여성 인신매매 행위는 끔찍하고 극악한 인권위반(a terrible, egregious violation of human rights)"이라고 비판한 것은 바로 오바마 대통령이 방한 당시 박 대통령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행한 발언을 토대로 하고 있다.

미국은 이 같은 일련의 외교적 노력을 토대로 과거사 갈등으로 이완됐던 한·미·일 안보협력을 되살려내는 모멘텀을 마련했고, 이는 연말 정보공유 약정으로까지 이어지는 '소기의 성과'를 낳았다.

그러나 정작 한·일 관계 악화의 근본 원인이었던 과거사 갈등을 풀어보려는 미국의 노력은 '수사'에 머물렀다. 아베 정권이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도 아랑곳하지 않고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한 고노(河野) 담화의 사실상의 '무력화'를 꾀하고 나섰지만, 미국은 무기력하게 대응하거나 경우에 따라 '방치'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국무부 대변인실은 몇 차례에 걸쳐 "무라야마(村山) 총리와 고노 전 관방장관의 사과는 일본이 주변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서 하나의 중요한 획"이라는 입장을 되풀이했으나 이 같은 논평기조가 실제 외교현장에 투영됐는지는 미지수다. 그나마도 '무라야마'와 '고노'와 같은 언급은 하반기 들어 국무부 브리핑장에서 사라졌다.

특히 작년 말부터 아베 정권은 아예 노골적으로 미국 교과서의 위안부 관련 기술(記述)을 수정하겠다고 나섰지만, 미국 정부 차원의 제어 움직임은 전혀 없었다. 급기야 양심적 사학자 19명이 "학술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집단성명을 발표하자 뒤늦게 논평을 통해 지지 입장을 표명했을 뿐이다.

아베 정권의 이중적 행태가 되풀이되고 미국의 어정쩡한 대응이 이어지면서 2차대전 종전 70주년을 맞아 일본의 진솔한 사과와 반성, 그리고 미래지향적 관계개선을 기대하던 한국내 여론은 급속한 실망감으로 바뀌었다. 셔먼 차관의 발언이 한국에서 역풍을 맞은 것은 바로 이 같은 기류가 저변에 깔렸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태도는 미국이 일제 식민지 과거사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고 그 해결 과정을 곁에서 지원하는 `진정성 있는' 접근보다는, 자국의 전략적 이해 극대화에만 초점을 맞춰 오히려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접근을 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동북아 역내에서 미국의 패권질서를 유지하고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려면 한·미·일 안보협력을 복원하는 게 중요하지, 공론화하기 거북스러운 과거사 문제는 적당한 수준에서 덮고 가면 된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과거사 갈등이 한·중·일 모두의 책임이라는 '양비양시론'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음은 물론이다.

더욱이 아시아에서의 존재감을 잃지 않으려는 미국에 일본이 주는 '전략적 가치'는 자못 크다. 중국을 함께 견제하는 안보파트너이자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고리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가는 경제파트너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국무부가 이번에 일본 측에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거듭 촉구하는 별도의 논평을 내놓았지만, 실제의 외교 노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특히 임기 말 업적관리가 시급한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과거사라는 복잡한 이슈보다 이르면 4월말 워싱턴D.C.를 찾을 아베 총리의 '선물 보따리'에 더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오히려 아베 총리가 이번에 의회 연설을 통해 과거사를 어정쩡하게 사과할 경우 이를 토대로 한국에 양보를 종용하고 상황에 따라 한·일 정상회담을 가질 것을 권고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마저 나오고 있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우리 정부가 한미 양국이 무조건 과거사 문제에 `같은 입장'이라고 강조만할 게 아니라 이번 사안이 한미동맹의 기축인 '가치의 공유'를 흔들고 나아가 전략적 협력에도 큰 차질을 줄 수 있다는 보다 명확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미국이 한·미, 미·일 동맹을 지칭하며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인권이라는 3대 가치의 공유를 강조하는 만큼 "끔찍한 인권위반"이라고 지목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을 상대로 확실하게 영항력을 행사하도록 압박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올여름 이전 성사될 것으로 보이는 박근혜 대통령 방미 이전까지 우리의 대미 외교 역량이 중요한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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