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1월 미얀마 네피도에서 열렸던 아세안정상회의
①6억4천만명의 경제블록 태동
(타이응웬성·박닌성·양곤=연합뉴스) 김권용·현경숙 특파원 =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 미얀마 등 10개 국가로 구성된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의 경제공동체, 즉 아세안경제공동체(AEC) 출범이 올해 말로 다가왔다.
아세안은 ▲정치안보 ▲사회문화 ▲경제 등 3개 분야에서 공동체를 실현한다는 계획에 따라 세부 이행 상황을 점검하며 통합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AEC 출범은 수출과 투자 확대를 통해 한국 경제에 새로운 성장동력을 제공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아세안이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통합돼 거대 단일 경제권을 형성하면 한국 기업의 동남아에 대한 수출, 투자가 활성화되거나 쉬워지고, 시장 점유율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 사회는 경제 부문 공동체인 AEC가 출범하면 인구 6억 4천만 명, 국내총생산(GDP) 3조 달러 규모의 거대 경제블록이 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거대 단일시장 출현 = 아세안 회원국들은 올 연말 공동체 출범에 대비, 실무 협의체가 본격적으로 가동하며 마무리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아세안 회원국들이 추진하는 통합작업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경제공동체(AEC)를 겨냥한 통합 행보다.
최근 글로벌 생산기지로 떠오르는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등 신생 개발도상국들이 대거 포진한 데다 앞으로 잠재 성장 가능성도 다른 지역보다 높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경제 공동체 부문은 상품과 서비스, 자본, 투자, 숙련 노동력의 이동이 자유로운 단일시장 구현을 목표로 현재 80%가량의 진척도를 보이고 있다. 경제 부문에서는 특히 역내 관세 장벽 해소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거뒀다.
아세안은 이미 세계 7위의 경제권으로 전체 인구가 유럽연합(EU)이나 미국보다 많고 노동력도 중국, 인도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크다.
하지만, 젊고 값싼 인건비를 앞세운 아세안의 잠재력은 이 같은 단순 순위를 뛰어넘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아시아개발은행(ADB)연구소는 아세안이 올 연말 AEC 출범에 맞춰 구조개혁을 성공리에 단행한다면 오는 2030년에는 EU와 겨룰 만한 경쟁력을 갖출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공동체 출범 작업이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는 아세안 내부의 평가와 달리 일각에서는 목표 시한 안에 통합을 성사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법적 강제력을 앞세워 통합을 강제했던 EU와 달리 회원국 합의만으로 통합을 추진하는데다 사회, 문화, 경제 등 각 부문에서 이질적 요소가 매우 많기 때문이다.
특히 회원국들을 이어주는 제도와 인프라 부문의 연결고리가 없고 각기 다른 기준과 규정, 통관 절차를 두고 있어 실제 통합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상당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맥켄지글로벌연구소(MGI)는 최근 아세안 통합 관련 보고서에서 "어떠한 분야에서도 완전한 의미의 통합은 이뤄지지 않았다"며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아시아개발은행(ADB)도 아세안 회원국들이 애초 통합을 위해 설정한 제반 목표들을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아세안 순회 의장국인 말레이시아의 무스타파 모하메드 통상장관은 아세안이 올해 말에 단일시장 출범을 선언하겠지만, 실질적인 통합은 오는 2020년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가별, 경제 주체별로 아세안공동체에 대한 인식과 이해도가 다른 점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실제 태국 중소기업들은 AEC 출범을 앞두고 전용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등 발 빠른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베트남은 전체 중소기업의 73%가 AEC 출범 계획 자체를 모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밖에 아세안 경제의 약 40% 선을 차지하는 핵심 국가인 인도네시아가 통합을 눈앞에 두고 다소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는 점도 걸림돌로 작용할 소지가 있다.
◇ 한국기업, 아세안 진출 '러시' 움직임 = 과거 중국에 치중했던 한국업체들이 현지의 임금 상승과 규제 강화 등으로 투자여건이 악화하자 아세안으로 선회, 진출하고 있다.
한국기업들은 대체로 저렴한 인건비와 성장 전망이 비교적 밝은 베트남에 투자가 집중되고 있고, 최근에 개방된 미얀마에 새로운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아세안의 관문이자 '포스트 차이나'로 불리는 베트남에는 무려 4천 개가 넘는 한국업체들이 진출,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생산기지 구축에 매달리고 있다.
지난 1992년 수교 이래 태광실업 등 1세대 기업들이 성공 신화를 일궈낸 베트남은 최근 들어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대기업들이 진출하고 이어 협력사 등 중소기업, IT업체들이 줄줄이 진출하고 있다.
덕분에 한국의 대(對) 베트남 투자는 73억 2천만 달러로 현지에 진출한 전 세계 60개국 전체 FDI의 36.2%를 차지하며 1위를 굳혔다. 이들 기업이 고용한 종업원만 무려 80만 명에 이를 만큼 지역경제에 공헌한 것은 물론 법인세 등 각종 세금으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곳간을 채우고 있다.
일각에서는 베트남이 매년 6%에 가까운 고속성장을 하는 배경에는 현지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의 숨은 공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베트남 정부가 파격적인 세제 지원 등을 제시하며 한국기업들을 집중적으로 끌어들이는 이유다.
한국업체들은 베트남 외에 인접 미얀마, 인도네시아, 태국 등 다른 아세안 회원국 진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얀마가 지난 2011년 민주화 개혁과 경제 개방을 시작해 시장이 열리자 한국 기업인들의 현지 방문이 줄을 잇고 있다. 수출, 투자 등 현지 진출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미얀마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200여 개이며, 이중 제조업체가 77개로 가장 많고, 다음이 서비스업 39개, 운송 7개 등이다. 제조업 중에는 봉제, 가발, 가방, 액세서리 등 노동집약적 업종이 대다수이다.
미얀마투자청 통계에 따르면 27억 달러에 달하는 대우 가스전 투자를 제외하면 한국 기업들이 현재까지 미얀마에 투자한 금액은 약 5억 달러이며, 투자 건수는 약 104건이다. 투자 규모는 평균 약 500만 달러(한화 약 54억 원)인 셈이다.
아직 초기 단계이긴 하지만 한국기업들의 진출은 사실상 기정사실로 된 형국이다.
인도네시아는 아세안 10개국 가운데 앞으로 세계 외국기업 투자진출 대상 1위 국가로 꼽힌다. 인도네시아는 한국에 중국, 미국, 베트남 등에 이어 국외투자 대상국 9위이며,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2천200여 개 사에 이른다.
인도네시아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들은 70~80년대 봉제, 신발 등 노동집약산업 중심이었으나 철강, 전자, 건설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포스코, 한국타이어 등 대기업의 진출로 투자 규모도 점차 대형화하고 있다.
태국 역시 한국 기업들의 아세안 진출 거점이 되고 있다. 인도차이나 반도의 중심 국가인데다 도로, 항만, 공항 등 인프라가 비교적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한류 열풍이 불면서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점점 높아지는 추세다.
태국은 중국, 일본계 기업들이 경제를 상당 부분 장악하고 있으나, 한류에 힘입어 한국 기업들의 무역 및 투자 진출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한국기업들의 아세안 진출은 대세로 굳어질 만큼 보편적인 현상이지만 곳곳에 장애물과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상대적으로 낮은 노동생산성과 높은 이직률, 각종 준조세, 두 자리 수의 임금 상승률 등은 현지에 진출하는 기업들이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다. 특히 베트남의 경우 최저임금 인상률이 올해에만 15%에 달해 기업들의 인건비 부담이 커지고 그만큼 노사분규에 휘말릴 소지도 크다.
또 실업난 해소와 첨단기술 확보 차원에서 첨단기업, 대기업 중심의 투자유치 정책을 추진하다 보니 중소기업, 자영업과 관련한 각종 지원책과 법적 보호장치는 선진국에 비해 크게 미흡한 편이다.
특히 영세 개인투자자들이라면 위험은 한층 커진다.
수많은 한국기업이 적잖은 기대와 희망을 품고 아세안 시장으로 진출하지만, 일부 업체들은 예기치 못한 장애물에 투자금 전액을 날리고 철수하는 기업들도 있다.
저렴한 인건비만 보고 철저한 분석 없이 뛰어들었다가 낭패를 보는 사례다.
[ⓒ 부자동네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