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역사왜곡'에 미국 사학자들 뿔났다…집단성명 파장>
"정치적 목적 하에 군대위안부 사실관계 왜곡은 용납 못해"
'일본 과거사 왜곡' 국제 쟁점 부상…미국정부 대응 주목
편집부
news@bujadongne.com | 2015-02-05 23:13:51
"정치적 목적 하에 군대위안부 사실관계 왜곡은 용납 못해"
'일본 과거사 왜곡' 국제 쟁점 부상…미국정부 대응 주목
(워싱턴=연합뉴스) 노효동 특파원 = 거침없이 과거사 왜곡 드라이브를 걸어온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벌집'을 잘못 건드린 모양새다.
미국 역사교과서에 담긴 일본군 위안부 기술을 고치겠다고 큰소리쳤다가 급기야 미국의 내로라 하는 역사학자들까지 일제히 들고일어난 것이다.
미국 자유민주주의를 형성하는 핵심가치의 하나인 표현의 자유와 학술의 자유에 정면으로 도전하면서 스스로도 감당하지 못할 역풍을 불러 일으켰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역사협회(AHA) 소속 학자 19명이 5일(현지시간) 연합뉴스에 보내온 집단성명은 아베 정권의 과거사 왜곡시도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처사인지를 역사학도의 관점에서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
우선 '사실관계'(fact)의 측면에서 일본군 위안부 숫자가 잘못됐다는 아베 총리의 주장이 명백히 잘못됐다는 게 이들 학자의 논리다.
성명은 "일본 정부문헌에 정통한 역사가인 요시미 요시아키(吉見義明) 일본 주오(中央) 대학의 신중한 연구와 아시아 생존자들의 증언은 국가가 후원한 성노예에 준하는 시스템의 본질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음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고 지적했다.
성명은 특히 "많은 여성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 징집됐으며 아무런 이동의 자유가 없는 최전선의 위안소로 끌려갔다"며 "생존자들은 장교들에게 강간을 당했고 탈출을 시도하다가 폭행을 당했다고 묘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역사학자들이 보다 큰 우려를 표명하는 대목은 아베 정권이 정치적 목적을 위해 과거사 왜곡을 강요하는 점이다.
성명은 "애국적 교육을 고취하려는 목적의 일환으로 아베 정권은 일본군 위안부의 확립된 역사에 목소리를 높여 의문을 제기하고 있고 학교 교과서에서 관련된 언급을 삭제할 것을 시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일부 보수적인 정치인들은 국가 차원의 책임을 부정하기 위해 법적인 논쟁을 펴고 있고 다른 정치인들은 생존자들을 비방하고 있다"며 "우익 극단주의자들은 위안부 문제를 기록으로 남기고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쓰는데 관여한 언론인들과 학자들을 위협하고 겁주고 있다"고 비난했다.
특히 미국 맥그로힐 출판사의 역사교과서인 '전통과 교류: 과거에 대한 국제적 관점'에서 위안부 관련 내용을 상세히 저술한 허버트 지글러 미국 하와이대 교수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나섰다.
성명은 "출판사를 지지하고 '어떤 정부도 역사를 검열할 권리가 없다'는 허버트 지글러 하와이대 교수의 견해에 동의한다"고 밝혔다.
미국 역사학자들이 이처럼 들고일어난 데에는 그대로 방치할 경우 이런 역사왜곡 시도가 급속히 확산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들은 ▲미국내 교육위원회의 흑인노예와 베트남전 관련 언급 삭제 움직임 ▲러시아의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 활동과 관련한 정보 배포 금지 ▲터키의 아르메니아 인종학살 책임 은폐시도 등을 대표적인 역사 왜곡 시도 사례로 제시했다.
이처럼 미국의 역사학자들까지 공식으로 반기를 들면서 아베 총리는 국제사회에서 상당히 체면을 구기게 됐다.
국내적으로 미국 역사교과서를 '바로잡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해당 출판사는 물론 미국내 언론과 학계가 한목소리로 비판을 가하기 시작한 형국이다. 특히 일본계 연방 하원의원인 마이크 혼다(민주·캘리포니아) 의원은 아베 정권의 과거사 왜곡을 규탄하기 위해 백악관에 이메일을 보내는 운동을 전개할 태세다.
더욱 큰 문제는 아베 총리의 이 같은 역사교과서 수정 시도가 미국 내는 물론 국제적 관심의 초점으로 떠오르면서 미국 정부로서도 일정한 개입이 불가피해진 점이다.
올해 2차대전 종전 70주년을 맞아 아베 정부가 주변국이 납득할 수 있는 '반성'과 '사과'를 표명할 것을 압박해온 미국으로서는 이번 사안이 학술자유와 관련된 문제로까지 비화되면서 외교적 불쾌감을 표시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 외교소식통은 "미국으로서는 과거사 갈등이 가급적 시끄럽지 않게 매듭되기를 바라고 있지만, 국내적으로 역사학자들까지 나서 집단반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정부 차원의 일정한 개입이 불가피해 보인다"고 말했다.
문제는 아베 총리가 이 같은 역풍에도 미국 교과서를 상대로 과거사 왜곡 시도를 계속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오는 4∼5월 아베 총리가 방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번 사안이 외교적 현안으로 대두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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